[꿀빵] 4년전 쓴 시나리오가 '예언서'…'판도라' 흥? 망?

머니투데이 홍재의 기자, 이슈팀 이지연 기자 2016.12.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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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사진=뉴스1'판도라'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사진=뉴스1


"판도라의 상대는 다른 영화가 아니라 '아줌마' 둘이서 벌인 현 시국입니다."

지난달 29일 열린 영화 '판도라' 시사회에서 박정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4년간을 준비해 온 영화. 박정우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판도라는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예언서'에 가깝다. 마치 4년전 현 시국을 미리 내다보고 만든 것 같이 현 시국과 똑 닮아있다.



영화 판도라를 통해 관객이 공감할 포인트는 크게 4가지다. △국민의 안전보다는 자신의 권력 안정을 우선하는 무능한 정부 △더 이상 지진안전지대라 부를 수 없는 지진 공포 △'최순실 게이트'로 접한 국정농단 △그리고 안전불감증이다.

무능한 정부와 안전불감증에 대한 불만이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국민적 정서라고 한다면 나머지 포인트들은 4년전 예상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영화 개봉 직전 모든 일은 벌어졌고 마치 현 상황을 모두 보고 만든 것 같은 영화가 때마침 개봉했다.



그래서 박 감독은 "4년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준비했는데, 저쪽은 40년을 준비했고 우리는 제작비가 150억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저기는 몇 천억원이 동원됐다. 게다가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있고 관객 동원력도 더 좋아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 판도라가 큰 관심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피로감만 가중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전했다. 관객들은 영화 판도라를 보고 공감을 할까, 아니면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영화관에 가서 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까?

영화 판도라의 흥망 포인트를 짚어 봤다.




◇흥 포인트1: 지진 공포증

판도라 제작기간은 4년이다. 촬영이 이뤄진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도 경주 대지진도 최순실 국정농단도 세상에 알려지기 전, 시나리오 집필은 이뤄졌다.

판도라는 후반 작업만 1년이 걸렸다. 개봉을 3개월 남기고 '경주대지진'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지진이 일어난 지점은 월성원자력발전소, 고리원자력발전소와 멀지 않다.

언제든 대지진이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 국민이 인식하게 된 것. 만약 원전이 폭발하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관객들은 판도라를 보며 공감하거나 미리 자신만의 대비책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흥 포인트2: 안전 불감증

판도라는 지진이 나서 원자력발전소가 무너진다는 단순한 설정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안전불감증, 무능한 정부와 잘 버무려 공감 포인트를 극대화했다.

영화 속 한 장면.

지진이 일어난 뒤 방사능을 포함한 가스가 발전소 내에서 새어 나온다. 수리팀은 재빨리 원전 내부로 들어가 배관을 수리하는데,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매뉴얼을 따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배관 압력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더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작업팀 직원에게 다른 직원이 "매뉴얼을 지키라"며 경고하지만, 작업팀 직원은 "작업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답답하면 네가 하던가"라며 받아친다.

판도라는 안전불감증은 일부 권력층이나 고위층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자기반성적인 요소도 담고 있다. 그래서 더 공감되고 옆 사람을 원망하게 되고, 또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흥 포인트3: 무능한 정부와 국정농단

영화 속 총리역할을 맡은 이경영은 정치 9단이다. 반면, 대통령 역으로 나오는 김명민은 젊지만 무능한 대통령으로 묘사된다.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 총리는 정보를 독점하고 대통령이나 국민에게 알리지 않는다.

원전이 터질 위험에 처하자 총리는 국민을 대피시키는 대신 군을 배치시켜 몰려 나오는 시민들을 통제하라고 명령한다. 실무단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대통령에게 알리지 말라고도 지시한다. 대통령보다 서열이 높은 '최순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무능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대통령이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주민을 대피시킬 매뉴얼이 있을 것 아니냐"고 질타하자 행안부 장관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것은 원래 없습니다. 계획 수립 자체가 불가능해서…"

김남길-정진영, '판도라' 파이팅~ / 사진=뉴스1김남길-정진영, '판도라' 파이팅~ / 사진=뉴스1
◇망 포인트1: '연가시'+'아마겟돈'

박정우 감독의 전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벌어진 재난영화 '연가시'였다. 연가시는 참신한 소재로 주목 받았지만, 일각의 '유치하다'는 평가도 피해갈 수 없었다.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예스러웠다.

판도라에서 박 감독은 이 같은 부분을 상당히 극복했다. 특히 영화 중반의 몰입도는 여느 1000만 흥행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우려되는 부분은 영화 초반과 후반 부분이다. 재난이 일어나서 주인공이 체육관으로 대피하고, 정부는 피난민들을 통제하는 그 과정이 연가시를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한 듯하다.

영화 후반부는 '아마겟돈'을 본 관객이라면 이미 결말이 뻔히 보일 정도다. 지난달 29일 열린 시사회에서도 영화가 '아마겟돈'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망 포인트2: 사투리야 외계어야? 사극이야 연극이야?

주연부터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까지. 영화 판도라에서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아쉬움 그 자체다. 시작부터 사투리가 귀에 거슬린다. '아, 이 영화에서 정말 경상도 사투리를 써본 사람은 아무도 없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죽하면 주연배우 김남길이 시사회 이후 "예전에 촬영한 영화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지만, 내 사투리 연기를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라고 평가했을까.

어색한 연기는 사투리 문제만이 아니다. 연가시가 다소 유치하게 느껴진 이유는 재난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군중신 문제도 컸다. 영화 '부산행'이 극찬을 받았던 부분 중 하나가 좀비 역할을 맡은 엑스트라들의 활약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좀비 각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모든 좀비가 각자의 개성을 갖고 서로 다른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연가시와 판도라는 엑스트라의 연기를 '복사+붙여넣기' 한 것 같은 모습이다. 청와대의 발표 장면에서 기자들은 질문을 하기 위해 동시에 손을 들고 동시에 손을 내린다. 방사능이 유출된다고 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기차역으로 한꺼번에 달린다. 그뿐 아니라 '표 사는 곳'에 몰려들어 서로 엉킨 시민들은 저마다 앞으로 손을 '쭉' 뻗어 흔든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도 않은 '멀쩡한' 시민들인데 그들의 움직임은 좀비보다도 일률적이고, 너무나 어색하다.

판도라는 개봉 첫날 17만명, 이튿날까지 3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쾌조의 출발을 보여줬다. 개봉 3일째인 9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표결'이 가결됐다.

매일 뉴스를 보며 영화 이상의 긴박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과연 영화관을 찾아서 판도라를 관람할지, 박 감독은 연가시가 기록한 관객수 450만명을 넘어설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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