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서초]내연녀가 떠난뒤 아내가 숨졌다

머니투데이 김미애 기자 2016.10.22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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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리포트]⑤소주에 누가 청산가리를 넣었을까..심리분석 결과 '연극성 인격장애'

/이지혜 디자이너/이지혜 디자이너


A씨는 결혼 후 7년 만에 얻은 딸아이, 남편 B씨와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이 남몰래 만나는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16년 전 결혼 이후 굳게 믿어온 남편의 배신만으로도 수치스러웠는데, 그 여자는 A씨를 만나 당당하게 "이혼하라"고 요구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남편에 대한 실망감도 컸지만 아이를 위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수소문해보니 남편과 내연녀 C씨는 1년 전인 2014년 2월 초등학교 동창모임에서 만난 사이였다. B씨의 이혼을 원했던 C씨는 '이혼 요구'를 시작으로 그녀의 평온한 일상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평온한 일상이 불행으로..이혼 요구

같은 해 9월. C씨는 아내와 통화 중이던 B씨의 전화기 너머로 자신의 목소리를 흘리며 불륜사실을 드러냈다. A씨는 화가 났지만 딸을 위해 남편을 용서해 주기로 했다. B씨 역시 "다시는 C씨를 만나지 않겠다"라고 A씨와 약속하면서 내연녀 C씨에게는 모바일 메신저로 결별을 통보했다.



B씨의 이별 통보에 C씨는 그녀를 더욱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심부름센터를 통해 찍은 B씨와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 해외여행가서 함께 찍은 사진 등을 전송한 C씨는 이번엔 A씨를 직접 찾아가 "못 헤어진다"고 통보했다.

자살소동까지 벌인 C씨의 이상스런 행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A씨에게 약을 먹여 남자와 성관계하는 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가 거절당했다. A씨로부터 내연관계 해소를 전제로 3억5000만원까지 받았지만 C씨는 B씨를 계속 만났다.

악몽 같은 나날이 계속되던 2015년 1월의 어느 날. 자정이 다 된 시각에 A씨는 C씨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는다. "할 말이 있다"며 집 앞으로 찾아온 C씨는 술을 자신의 차에서 마시자고 했다가 A씨가 거절하자 함께 집으로 가 소주를 마셨다. 한참 후 C씨가 떠나고 A씨는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새벽 4시쯤 귀가한 남편이 뒤늦게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A씨는 숨진 뒤였다.


그녀의 죽음도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지만 사인은 더욱 놀라웠다. 부검 결과 혈액과 위 내용물에서 청산염이 검출돼 부검의는 '청산중독'으로 판단했다. 청산가리는 맹독성 물질로서 그 치사량은 혈액 농도로 2.5ppm(= mg/L) 정도이고, 일반적인 사람이 치사량의 10배 이상을 복용할 경우 호흡곤란, 경련, 의식불명 등의 반응을 보이고 10분 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지혜 디자이너/이지혜 디자이너


누가 소주에 청산가리를 탔을까..진실공방

용의자로 지목된 C씨의 지문을 현장에선 찾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핸드폰과 컴퓨터 검색 내용 분석 결과 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C씨는 A씨를 만나기 전부터 치밀하게 청산가리 구입을 시도해왔다. C씨는 인터넷 포털에 '청산가리 구입하고 싶습니다'는 글을 올리고, '청산가리 구입 방법'과 '청산가리로 죽이기' 내용을 자주 검색했다. A씨가 숨진 후에는 '청산가리 부검' 방법이 검색됐다.

C씨의 계획적인 범행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검찰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 심리분석을 의뢰했다. A씨가 마신 소주에 청산가리를 넣은 것일까. C씨는 심리분석조사를 받는 동안 급격한 기분 변화를 보였다.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 슬퍼했다가 곧 즐거워했다.

"당신은 소주에 청산가리를 당신의 차 안에서 탔습니까."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 분석관의 질문에 C씨는 "아니오"라고 답했지만, 거짓 진술을 할 때 드러나는 유의미한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 소주를 탄 장소를 차안으로 특정하게 됐다. 검사 결과는 4명의 대검 분석관들의 심의를 거쳐 증거로 활용됐다.

분석관들은 그녀를 "전형적인 연극성 인격장애 유형"이라고 봤다. C씨의 임상심리를 담당했던 분석관은 "감정기복이 크고 쉽게 흥분한다"며 "중립적인 단어의 뜻을 물으면 '좋다' '나쁘다'의 정서로 대답한다. 또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어 질문을 하더라도 모두 자기와 관련된 일로 연관지어 설명한다"고 말했다.

연극적인(히스테리성) 성향이 있는 사람은 감정에 따라 상황을 바라보고, 타인이 자신의 애정욕구와 의존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 욕구 좌절 시 타인을 비난하고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C씨에 대한 심리분석실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법정에서 C씨는 살인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사건 당일 A씨를 찾아간 것은 "사과하고 싶었고, A씨가 헤어지라고 하면 헤어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숨지기 전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유력한 용의자 C씨의 말은 사실일까.

"내연남에 집착..살해동기 충분"..계획적 범행

법원은 음식물의 소화정도나 혈중 알코올 농도, 턱관절에 나타난 사후 강직 등을 고려해 사망 시각을 자정 무렵부터 새벽 5시 사이로 봤다. 이 시간대는 A씨가 C씨와 함께 집에 들어간 이후, B씨가 A씨를 업고 나올 때까지다.

A씨가 청산가리가 희석된 소주를 마시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까지 집에서 A씨가 나오거나 C씨와 B씨 외에 제 3자가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A씨의 자살 가능성에 대해 법원은 "불륜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딸을 위해 잘 살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는데 사건 당일 아무런 유서도 없이 안방에서 딸이 자고 있는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자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축했다.

또 법원은 '연극성 성향을 갖고 있다'는 대검 과학수사부 심리분석실 의견서를 인용하며 "내연관계에 있던 B씨에게 집착해 온 C씨가 B씨와 이혼하려 하지 않는 A씨를 살해할 만한 동기는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C씨의 잔혹한 범행으로 A씨가 그토록 아끼던 9살 난 딸은 한순간에 사랑하는 엄마를 잃었다. 범행 전 청산가리와 소주를 미리 준비한 C씨는 내연남 B씨가 집에 없는 시간을 확인해 범행을 계획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지난 8월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하현국 부장판사)는 "청산가리를 미리 준비해 소주에 희석시킨 뒤 A씨에게 마시게 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C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검사와 C씨 모두 항소해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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