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막힌 중도금 대출에 아파트 계약 포기 속출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16.10.23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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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분양 당첨자·사전예약자 일부 계약 포기…민간분양은 2금융권 대출에 금리 부담 가중

@머니투데이 김지영 디자이너@머니투데이 김지영 디자이너


정부의 대출규제 정책으로 내 집 마련을 꿈꿨던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아파트 중도금 대출이 막히거나 2금융권 대출로 금리가 치솟으면서 급기야 청약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2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한 수원호매실 A7블록은 최초 계약을 진행한 결과 전체 700가구 가운데 353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았다. 청약 당시 688가구가 접수해 다소 미달이 발생하긴 했지만 계약률은 이보다 더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미분양이 발생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중도금 대출이 불확실하다는 점이었다. 통상 아파트 중도금 대출은 입주자모집공고가 나가기 전 사업시행자가 시중 은행과 협의를 거쳐 집단대출로 취급한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정부의 대출규제 정책에 따라 시중 은행들이 대출 줄이기에 나서면서 수원호매실 A7블록은 당첨자 계약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도금 집단대출을 취급할 은행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다.

중도금 대출이 불투명해 졌지만 LH는 별 다른 안내 없이 입주자모집공고와 청약을 진행했고 계약일이 돼서야 당첨자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대출이 당연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당첨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단지의 한 계약자는 "사전에 안내도 없이 청약 통장을 쓰고 나서야 중도금 대출이 안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며 "계약하긴 했지만 곧 다가오는 중도금 납입일에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 지 막막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중도금 대출 은행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소식에 당첨자들은 계약을 망설이거나 심지어 포기하기도 했다. LH 경기지역본부 관계자는 "계약 당일 안내를 받고 계약을 포기한 당첨자들이 많아 미분양이 다소 발생했다"며 "현재 시중 은행들과 협의 중으로 첫 중도금 납입일인 오는 12월까지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출 조이기에 중도금 대출이 어렵게 된 공공분양 아파트는 이곳 외에도 하남감일지구 B7, 시흥은계지구 B2 등 6개 사업장 5528가구에 달한다. 특히 감일지구나 은계지구 등은 2012~2013년 사전예약을 신청한 사람들이 수년간 기다려온 사업장이어서 중도금 대출 중단에 대한 당혹감은 더한 상황이다.


감일지구의 한 사전예약자는 "6년 동안 기다려 온 공공분양인데 대출이 막혀버리니 난감하다"며 "감일지구 다른 블록의 사전예약자들은 지금이라도 계약을 포기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도금 납입일까지 집단대출을 받지 못하면 계약자들은 각자 신용대출로 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분양의 자격조건이 무주택 서민임을 감안하면 이들이 신용대출로 수억원의 목돈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공분양 사전예약자들은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하면 연체료를 물면서 버티다가 입주할 때 주택담보대출로 잔금을 치르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연 10%대에 달하는 연체이율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정부의 대출규제로 인한 피해는 공공분양뿐 아니라 민간분양 계약자들에게도 번지고 있다. 민간 아파트들 역시 최근 중도금 집단대출 은행을 구하지 못한 채 청약과 계약을 진행하는 사업장들이 늘고 있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정부의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 발표 이후 분양에 나선 민간 사업장 42곳 가운데 현재 은행과 중도금 집단대출 협약이 완료된 곳은 8곳에 불과하다.

1금융권에서 대출을 기피하니 시행사들은 궁여지책으로 2금융권 대출을 안내하기도 한다. 하지만 2% 후반대 수준인 1금융권 금리보다 약 1%포인트 금리가 비싼 2금융권 대출로 서민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일부 저축은행의 중도금 대출 상품의 경우 5~6%대의 금리를 요구해 1금융권의 신용대출 금리(4%대)보다도 높다.

결국 돈 없는 서민들만 정부 대출규제 정책의 희생양이 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감일지구 사전예약자는 "사전예약 포기 물량이나 미분양은 굳이 대출을 받지 않아도 중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계약해 간다"며 "집 없는 사람들만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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