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돈 굴려도 적용, 김영란법에 여의도 '화들짝'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한은정 기자, 최석환 기자 2016.09.28 05:39
글자크기

대부분 법적용 대상..업계 침체 가속화 우려에 여의도 상권도 흔들

"김영란법 교육만 벌써 3번째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아닌지 아무도 확답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변호사들도 다들 '내 생각은 이런 데 확신할 수는 없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할 뿐이죠."

연기금 돈 굴려도 적용, 김영란법에 여의도 '화들짝'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에 만난 한 자산운용사 임원의 말이다. 공무원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닌 자산운용사에서 김영란법 교육에 열을 내는 이유는 연기금 등 공적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경우 '공무수행 사인(私人)'으로 법적용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 자금을 받는 운용사도 김영란법 대상이 된다고 밝혀 금융투자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연기금은 위탁 운용과 하위 운용으로 분산돼 있어 대부분의 자산운용사가 해당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 내에서도 당장 적용 범위가 문제다. 권익위에서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매니저는 해당된다고 밝혔지만 그 외 범위는 확정짓지 못한 상태다. 한 대형운용사 임원은 "매니저를 포함해 관련 보고라인은 모두 김영란법 대상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정확한 범위를 알 수 없어 일단 보수적으로 해당 부서 전체 인원을 대상이라고 상정하고 있다"며 "본인이나 배우자가 김영란법 대상인 직원과는 회식도 1인당 3만원 이하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내 자산운용 시장에선 리테일 자금이 계속 줄면서 대부분의 투자금이 기관자금화되고 있는데 자산운용사를 김영란법 대상으로 포함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운용업계가 더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월말 기준 펀드에서 개인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5.15%에 불과하고, 기관을 비롯한 법인자금은 74.84%에 달했다.개인자금이 43.74%, 법인자금은 56.25% 수준이었던 5년 전(2011년말)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가면서 개인투자자들은 투자할 돈이 없기 때문에 운용사로 들어오는 자금이 대부분 기관자금"이라며 "김영란법 때문에 자금을 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 고객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않는 얘기"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기관자금을 운용하는 한 펀드매니저는 "업계에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생긴 선후배들이 소소하게 저녁자리에서 얘기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일도 없어질 것 같다"며 "개인의 일상까지 제약이 생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런 이유로 증권사·자산운용사가 밀집돼 있는 서울 여의도 상권도 예상 외로 타격이 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여의도 상권은 지대가 비싸 여타 서울 지역보다 물가가 비싼 편이다. 증권사·자산운용사 본사가 모여있어 고급 음식점을 찾는 임원들도 많다. 6년간 지속된 박스권 장세에 고급 술집, 횟집이 점점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자산운용사 마케팅 임원은 "혹시 몰라 김영란법 대상이 아닌 증권사 사람들과의 만남도 자제하는 분위기"라며 "당분간 아무도 만나지 말고 아무 해당도 되지 않게 조용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