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끝났다…"돈 낼 능력 없으면 못한다"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윤준호 기자, 방윤영 기자, 김민중 기자 2016.09.2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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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시행]'영란법 직격탄' 식당·술집·골프장·꽃집…서민 일자리 타격 불가피

/표=이승현 디자이너/표=이승현 디자이너


'최후의 만찬'은 끝났다.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기존에 자연스럽던 관행 상당수가 '범죄'가 됐다.



공직자는 물론 교직원, 언론인 등 민간인의 일상적 사생활, 인간관계를 법으로 규제하다 보니 혼란은 불가피하다. 불고지죄(다른 사람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죄. 배우자의 법 위반 사실을 알고도 신고 안 하면 처벌, 청탁·금품을 받았을 경우 신고 의무 등)적인 요소도 있어서 더욱 긴장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행동 하나하나의 위법성을 자기 검열해야 하다 보니 일단 안 만나고, 안 먹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사회를 청렴하게 바꾸자는 취지로 김영란법이 만들어졌지만 불똥은 곳곳으로 튈 조짐이다. 당장 식사 단가가 비싼 호텔, 식당을 비롯해 골프장, 술집, 꽃집 등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해당 업종의 타격은 결국 서민들의 일자리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번주 초(26~27일) 고급호텔·식당 예약은 대부분 조기 마감됐다.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마지막 오찬·만찬'을 즐기려는 손님들이 몰리면서다.

일부 식당들은 3만원 이하 '영란세트'를 내놨다. 매출 타격을 감수하더라도 문 닫는 위기를 넘기자는 목적이다.


◇27일까지 '최후의 만찬'

23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 한우구이 전문점은 '최후의 만찬'을 즐기러 온 손님들로 붐볐다. 1인분에 4만원대 메뉴를 시키면 직원들이 직접 구워주는 고급식당이다.

이날 식당을 찾은 은행원 장모씨(42)는 "오늘이 마지막 모임이라고 생각하고 28일부터는 웬만하면 저녁 모임을 자제할 것"이라며 "굳이 오해받을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시중 은행원은 법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장씨는 업무상 공직자 등과 만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 식당은 김영란법 시행일인 28일부터 1인분을 기존 180g에서 100g으로 줄이는 대신 가격을 3만원 이하로 낮춘다. 고기를 구워주는 서비스도 없앤다.

대신 직원들을 내보낼 예정이다. 직원 정모씨는 "음식을 서빙하고 고기를 구워주는 직원이 지금 10명인데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일단 겪어봐야 알겠지만 불안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급호텔에도 '3만원↓ 메뉴' 문의 쇄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연회장 뱅커스클럽은 3만원짜리 식사 메뉴 9가지를 새로 마련했다.

28일부터 이 메뉴들을 선보인다. 호텔 관계자는 "예약문의 3건 중 1건은 '3만원 이하 식사로 되냐'는 문의"라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 더리버사이드 호텔 중식당은 2만9900원짜리 세트를 내놨다. 명목상 '오픈 7주년 특가 세트'이지만 사실상 '영란세트'다. 이 식당 관계자는 "앞으로도 특별 할인을 실시해 3만원 이하로 가격을 맞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중구 롯데호텔 일식당은 28일 이후 예약률이 전년 동기 대비 20~30% 감소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콜레라와 김영란법 둘 다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산 킨텍스에서는 이번 주에만 VIP 연회 2건이 취소됐다. 기본 메뉴가 5만원선인데 2만원대 도시락을 주문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킨텍스 관계자는 "모임 자체가 법 적용 대상인지 판단하기가 애매해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고급호텔이나 연회장은 음식값을 내리는 대신 대관료를 올리는 방안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흥주점, 28일 이후 예약 '텅텅'

'일산에서 가장 비싼 술집'으로 알려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인근 한 단란주점도 '예약 절벽'을 실감하고 있다. 가격은 3인 기준 100만원 선으로 자기 돈 내고 먹으러 오는 손님들은 거의 없다.

평소 주말·평일 가릴 것 없이 예약이 꽉 차는 곳이다. 27일 새벽 1시 전화를 걸어 예약을 문의했다. 종업원은 "지금은 자리가 없고 와도 기다려야 한다"며 "언제 자리가 난다고 확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이 시행되는 28일 이후에는 예약 상황이 급변했다는 설명이다. 이 종업원은 "29일 밤은 33개 룸 중 3개만 예약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싱글몰트바는 외진 골목에 있지만 평소 예약 없이는 자리를 잡기 어려운 곳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가격이 비싸 접대용 수요가 많다. 예약률은 평일·주말 관계없이 항상 100%. 하지만 28일 예약은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1인당 기본 입장료는 1만원, 가장 싼 칵테일 메뉴가 2만3000원이다. 입장료에 칵테일 한잔 값을 더 하면 김영란법에서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 예외적으로 제한한 금액 3만원을 초과해버린다.

이 곳에서 일하는 매니저는 "(김영란법은) 프리미엄바는 장사를 그만두라는 법"이라며 "'김영란 칵테일'이라도 만들어야지 않냐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골프장, 주말 '마지막 라운딩' 끝…캐디들 "고용 불안"

골프장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24일 수도권 유명 A 골프장에는 법 시행 전 마지막 주말 라운딩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골프장 관계자는 "9월28일 이전에는 주말은 물론 주중까지 예약이 꽉 찰 정도"라며 "주말인 24일과 25일에는 하루 160팀 이상이 예약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0월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법 적용 대상이 월급쟁이들이라 원래 부자인 사람을 제외하면 사실상 치기 어려워졌다.

이날 수도권 B 골프장을 찾은 한 자영업자는 "더치페이할 만큼 돈 있는 사람만 골프를 치는게 맞다"며 "그게 사회 정의"라고 말했다.

설사 자기 돈을 내고 치더라도 눈치가 보인다. 불필요한 의심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중앙부처 과장급 한 공직자는 "골프장에서 아는 사람 눈에 띄면 괜한 소문이 나기 십상"이라며 "일일이 더치페이라고 해명하고 다닐 수도 없고 아예 안치는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B 골프장의 한 캐디(경기보조원)는 "골프장마다 캐디는 물론 코스 관리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식당 종업원까지 수백명이 일하는데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난' 가격 20년 전 그대로인데 어떻게 낮추나요"

꽃집도 충격이 크다. '명당' 자리를 꿰찼던 꽃집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뒷골목으로 옮기거나 폐업하는 경우도 생겼다.

꽃배달 서비스업체 대표 정모씨는 "9월 이후로는 승진 난(蘭) 주문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여년간 꽃집을 운영해온 장은옥 한국화훼장식기사협회 부회장은 "화훼시장에서 선물용 화환·난이 차지하는 비중은 50~60%에 달한다"며 "화훼업계의 타격은 상상 이상"이라고 하소연했다.

장 부회장은 "식당은 '영란 세트' 메뉴처럼 가격을 조정할 수 있지만, 꽃집은 20년 전 가격 그대로인 화환이나 난 가격을 더 이상 낮추기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꽃집 대표는 "회사 거래처에 선물용 꽃을 주문하는 고객들이 배송비 포함 5만원 이하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한다"며 "배송비 1만5000원을 제외하면 3만5000원짜리를 파는 셈"이라고 말했다. 매출에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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