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폭락은 기본"…'김영란법'이 바꾼 서울상권 지형도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엄성원 기자 2016.09.2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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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시행]광화문·인사동 등 고급음식점 매물 늘고 권리금 급락…카페·패스트푸드점 비중 늘어

서울 광화문의 주요 상권 중 한 곳인 르메이에르 종로타운(피맛골) 입구. /사진=김사무엘 기자서울 광화문의 주요 상권 중 한 곳인 르메이에르 종로타운(피맛골) 입구. /사진=김사무엘 기자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광화문, 인사동, 여의도 등 서울 주요 상권 지형도를 바꿔놓고 있다. 지난해 메르스 타격에 이어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 감소 우려가 커지면서 서둘러 가게를 정리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려는 한정식, 일식집 등 고급 식당이 늘고 있다. 고급음식점이 사라진 자리는 카페, 패스트푸드 등 상대적으로 수요가 안정적이고 가격이 저렴한 음식점들이 메워가는 모습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주요 상권 중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권은 정부청사와 시청, 언론사들이 밀집한 도심 한복판의 광화문·인사동 상권과 국회와 증권사, 방송사 등이 모여 있어 정관계 인사나 기자들의 출입이 잦은 여의도 상권 등이다.



세종시 이전으로 주고객층 중 하나인 공무원의 수가 크게 줄어들더니 지난해는 메르스로 회식을 비롯해 모임 취소가 줄을 이었고 올해는 경기 불황에 김영란법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광화문 상권의 경우, 이미 한정식집, 한우 고깃집, 일식당과 같은 고급 음식점 중 3분의1 가량이 매물로 나와 있다. 종로구 청진동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피맛골 시절부터 오랫동안 장사한 상인들이 대부분인데 지금은 장사를 접겠다는 분들이 꽤 있고, 실제로 가게를 내놓은 상인도 있다"며 "장기 불황으로 영업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상인들이 많았는데 김영란법이 일종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수십년째 한곳에서 장사를 이어온 노포들이 밀집한 인사동 한정식집 거리의 형편은 더욱 심각하다. 인사동 한정식집의 절반 이상이 매물로 나와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60년째 장사를 하다 지난 7월 문을 닫은 한정식집 유정(有情)의 소식은 인사동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유정은 현재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사동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한집 건너 한집은 장사를 접는 분위기"이라며 "최근 상황으로는 월세조차 감당하기 힘든 가게들이 태반"이라고 귀띔했다.

여의도 상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 고급 한식당과 중식당이 1인 기준 식사비가 3만원을 밑도는 일명 '김영란 정식' 메뉴를 새로 만들어 장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매출 감소는 피하기 힘들다. 국회 인근 여의도동의 한 한식당 관계자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반찬 가짓수를 줄였지만 맛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요즘처럼 채솟값이 비쌀 때는 적자를 보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겐 권리금도 또 다른 걱정거리다. 매물로 나온 점포는 많은데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서 권리금도 급락하는 추세다. 장사를 시작할 때 1억~2억원 이상을 냈던 권리금을 지금은 절반도 채 회수하기 힘든 상황이다. 르메이에르 타운을 예로 들면 한때 1억5000만원(전용 100㎡ 점포 기준)을 호가하던 상가 권리금이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권리금을 받지 않겠다는 점포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머니투데이 김지영 디자이너@머니투데이 김지영 디자이너
김영란법은 서울 주요 상권의 업종 지도 변화를 한층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종로1·2·3·4가동 전체 외식업종에서 양식집과 일식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7월 각각 7.9%, 7.3%에서 지난 6월 현재 모두 7.1%로 낮아졌다. 점포 수 역시 양식집이 224개에서 168개로 25%, 일식집이 207개에서 168개로 18.8% 각각 감소했다.

반면 카페는 같은 기간 점포 수가 370개에서 380개로 늘었다. 외식업종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 6월 기준 16%로 2014년 7월보다 3%포인트 높아졌다. 패스트푸드점의 비중도 2.7%에서 3.3%로 0.6%포인트 상승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상가 임대차 계약 기간이 있기 때문에 당장 점포를 정리하기보단 메뉴 가격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운영을 이어가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사를 접는 점포도 늘어날 것"이라며 "직장인 위주의 일반 식당, 카페 등의 창업이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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