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박정원 회장 "두산 순차입 5조로 줄여라" 특명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6.09.27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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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 온다, 부채 절반 줄여 살아남은 자가 강자"

박정원 회장이 이끄는 두산그룹이 현재 11조원대인 순차입금을 절반 이하인 5조원대로 줄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올해 3월 두산 (155,500원 ▲4,500 +2.98%) 총수가 된 박 회장은 반년 간 그룹 경영실태 전반을 진단했다. 이후 전임 박용만 회장 시절 대형 M&A(인수·합병)로 사세가 늘었지만 동시에 막대한 외부차입으로 경영건전성이 악화됐다고 판단, 이 같은 특급 주문을 실무진에 내렸다.

25일 두산 고위 관계자는 "박정원 회장이 경영 현안을 파악한 이후 내린 결론은 두산의 재무상태가 글로벌 경제위기 등에 지나치게 취약한 상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선진국의 통화가 본원가치 대비 크게 남발돼 있어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긴축이 시작될 경우 다시 위기가 시작될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려면 현재보다 부채를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두산그룹의 지주사인 ㈜두산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1조83억원 규모의 순차입금을 갖고 있다. 지난해 말 11조3945억원에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부채비율은 277.2%에 달하고 그룹의 차입금의존도가 44.1%에 육박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의 주도로 두산은 2분기에 두산인프라코어 (8,430원 ▼130 -1.52%)의 공작기계사업부문을 팔았고 두산건설 (1,240원 0.0%)의 HRSG(배열회수보일러) 설비도 매각했다. 이를 통해 1조7846억원을 조달했는데 자금을 전부 차입금 상환에 사용한다면 순차입금은 10조원 이하로 줄게 된다. 2007년 두산밥캣을 대부분 타인자본으로 인수한 이후 순차입의 조단위 규모가 처음으로 한자릿수가 되는 셈이다.

박 회장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두산밥캣 기업공개(IPO)를 통해 차입금을 추가적으로 2조원 가량 줄일 계획이다. 두산밥캣의 예상 시가총액이 4~5조원 수준인데 공모 구조를 신주 발행 없이 전량 구주매출로 잡아 약 2조원에서 최대 2조4491억원 어치의 지분을 팔려는 것이다. 이 거래가 성사되면 두산의 순차입금은 약 8조원까지 줄 수 있다.


박정원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룹 재무를 총괄하는 CSM(자본구조관리)팀에 밥캣 상장 이후 3조원의 차입금 해소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영구채나 상환우선주처럼 '무늬만 자본'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지 않고 재무구조 개선효과를 낼 수 있는 실질적인 자본구조 강화대책을 요구한 것이다. 두산그룹의 공식적인 부채비율은 270%대이지만 사실상 고금리 부채로 볼 수 있는 영구채 등을 차입금으로 잡으면 수치는 400%까지 확대된다. 박영호 전무가 이끄는 CSM팀은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외 투자은행(IB) 등에 자문을 요청한 상태다.

두산 내부에선 두산건설과 두산중공업의 차입금 해소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두산건설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이 4.5%를 기록해 지난해(2.9%)보다 상황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과도한 금융비용부담이 지속되고 있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두산건설의 차입금은 1분기 말 기준 1조1475억원으로 올해 말에 4000억원대로 평가되는 신분당선 지분을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두산건설의 대주주(보통주 56%, 우선주 28%)인 두산중공업은 지난 5년간 자회사에 3조원에 가까운 지원을 하느라 곳간이 바닥난 상태다. 지난해 두산건설 주식 감액손실과 건설부문의 부실사업장(하남위브, 하비코타워 등)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순손실이 4511억원까지 늘었다. 차입금이 2014년 2조6832억원에서 지난해 말 3조2096억원으로 늘면서 이자부담이 과도해 1조원 이상 부채를 줄여야 한다.

박정원 회장 전임 박용만 회장은 2005년 그룹 부회장, 2012년 그룹 회장을 맡으면서 올 초 퇴임 전까지 10년간 M&A를 통한 사세 확장 전략에 집중했다. 중국 등 신흥국의 성장을 기대해 외부차입을 동원해서라도 사업을 늘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확장경영에 주력한 것이다.

박정원 회장은 이와 달리 세계 경제를 저성장 기조의 이른바 '뉴노멀'에 맞춰 예상한다. 이런 기조에서 그룹의 규모를 줄이더라도 외부 차입을 해소하고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혹한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치는 것이다. 박 회장은 국내 최장수 기업인 두산의 120년 역사를 언급하면서 강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격언을 자주 다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이 1년 내에 갚아야 하는 만기 도래 차입금은 약 7조원, 두산은 지난 10년간 차입금을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해 돌려 막아왔다. 두산 관계자는 "최근 이익을 내기 시작한 연료전지 사업이나 기존 두산밥캣 등의 영업 호조에 기대를 건다"며 "만성적인 빚 부담을 박정원 시대엔 떨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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