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게, 멋있게 짓겠다는데" 불붙은 강남 재건축 '층수 논쟁'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16.09.2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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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50층…초고층에 목매는 재건축-①]"재산권 침해" vs "명분 없는 요구"

편집자주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층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파트 층수를 35층 이하로 제한한 서울시와 50층 이상 초고층으로 짓겠다는 재건축 조합이 부딪히고 있다. 인구 1000만명이 사는 서울의 중심지를 어떻게 개발할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부족한 실정. 아파트 층수를 둘러싼 이견과 초과이익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합리적인 접점을 모색해본다.

강남 잠실 일대 재건축 아파트 단지 전경. @머니투데이 DB. 강남 잠실 일대 재건축 아파트 단지 전경. @머니투데이 DB.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층수 제한'을 둘러싼 논쟁에 불이 붙었다. 아파트 층수를 35층 이하로 제한한 서울시 규정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50층 이상 초고층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규제 완화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강남 재건축 조합들은 시가 과도한 높이 규제로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시는 35층 이하로도 충분히 재건축할 수 있고 층수를 완화해 줄 명분도 없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나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초고층 아파트를 둘러싼 의견이 엇갈린다.



◇왜 35층일까…"규제완화→스카이라인 훼손, 잠실단지 만큼만"

서울시가 2030도시기본계획에 아파트 층수를 35층 이하로 제한하는 데 참고가 된 33층 한강변 잠실 리센츠 단지 전경. @머니투데이 DB.서울시가 2030도시기본계획에 아파트 층수를 35층 이하로 제한하는 데 참고가 된 33층 한강변 잠실 리센츠 단지 전경. @머니투데이 DB.
2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잠실주공5단지 등 주요 단지들이 최고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차별화된 디자인의 건축물로 경관개선에 기여할테니 용적률 300%, 높이 35층 이하로 묶여 있는 규제를 폐지하거나 예외적으로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는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 '특별한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의도가 아닌 이상 규제를 풀어줄 이유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일조권, 조망권을 독점하거나 분양가를 끌어올릴 우려가 있고 2013년 이후 높이 제한을 받아 재건축을 진행 중인 단지와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에 들어설 엘시티 단지. 현재 101층 규모의 엘시티 더 레지던스 분양이 진행 중이다. @머니투데이 DB.부산 해운대구 중동에 들어설 엘시티 단지. 현재 101층 규모의 엘시티 더 레지던스 분양이 진행 중이다. @머니투데이 DB.
재건축 조합들은 시의 35층 제한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과도한 규제라고 보고 있다. 2030도시기본계획에 명시된 높이 제한 규정은 시가 2013년 1월 스카이라인 관리방안과 한강 중심 도시공간 관리방향을 발표한 이듬해에 수립됐다.

기준 마련 연구에 참여한 임희지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높이 규제는 각종 초고층 개발사업이 계속되면 저층주거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일조권과 조망권의 사유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며 "한강변 잠실리센츠가 33층, 잠실엘스가 34층임을 고려해 35층 이하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밀화에 따른 교통여건 분석 등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35층'이라는 기준이 도출된 것이 아닌 것은 사실인 셈이다. 재건축 조합들이 지역 특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층수 제한을 풀어달라고 할 수 있는 빌미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해운대는 되고 강남은 안된다?…전문가도 엇갈려

"더 높게, 멋있게 짓겠다는데" 불붙은 강남 재건축 '층수 논쟁'
상업시설이 아닌 거주 전용 아파트를 초고층으로 굳이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엇갈린다. 동탄·판교 등 수도권 아파트도 이미 고층화됐고 부산 해운대엔 80~100층 안팎의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상황에서 인구가 밀집한 강남을 35층 이하로 묶어둘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적잖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같은 용적률이라도 높게 지으면 일조권, 조망권, 녹지 확보가 쉽고 삶의 질도 높아진다"며 "강남에 개발이 편중되는 문제도 있지만 1000만명이 사는 서울의 중심지를 중저층 주거지로 묶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도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형 중앙대 교수도 "획일적으로 35층 이하로 정하기보다 지역 특성에 따라 유연한 높이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초고층 아파트를 고집하는 이유가 도시경관이나 주거환경 개선, 건축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초과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라는 시각도 많다. 40~50년 후 다시 재건축하기도 쉽지 않고 재난대응이나 환기 등에도 좋지 않은 초고층 아파트를 우후죽순 들어서게 둬선 안된다는 것.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초고층으로 갈수록 재건축 조합원의 혜택이 커지는 구조인데 시는 지나친 초과이익을 일정 부분 제한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최근 시장에 국지적 투기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규제를 풀어서 초고층 아파트를 허용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노승범 한양대 교수도 "주거용으로 35층은 매우 높은 수준이며 본질은 층수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쾌적한 주거환경을 최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주어진 층수 내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사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시가 층수제한을 대폭 완화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미 이 기준에 따라 재건축을 진행 중인 단지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최근 과열 양상의 강남 재건축 시장에 기름을 붓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다만 도심 고밀 개발이 언제든지 제기될 수 있는 이슈인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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