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누운 기업, 좀비 직원

머니투데이 김준형 산업1부장 겸 부국장 2016.08.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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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40雜s]누운 기업, 좀비 직원


폭염 대처용으로 손에 잡은 소설 제목이 '누운 배'(이혁진 저, 한겨레출판)이다.
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터라 '다큐에 가까운 기업소설'이라는 서평이 눈에 들어왔고, 한국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돼 버린 조선업을 다뤘다는 게 호기심을 끌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일기가 되기 십상이고 경험조차 일천할 땐 '박봉성류' 기업만화로 날아가곤 하는데, 이 30대 초반 작가가 겪은 기록은 수십억원짜리 컨설팅 보고서가 다룰 수 없는 기업문화와 구조에 대한 내부 진단이다.

중견 조선업체가 건조중이던 자동차 운반선이 의장부두 도크에서 쓰러진다. 길이 200미터 높이 34미터 폭 32미터, 6700척의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배가 기우뚱 하더니 이내 넘어가 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참으로 '소설 같은' 이런 일들에 익숙한 덕에 소설의 리얼리티가 훼손되지 않는게 우리의 비극이다.



저가수주와 실적부진에 시달려 온 이 회사 회장은 배를 일으켜 세워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밀어부친다. 하지만 2년만에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스러지고 녹슬어 구멍난…썩은 배 였다.

글 속에서 나는 몸뚱아리가 썩어 좀비가 돼 버린 흉칙한 회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기업은 어떻게 좀비가 돼 가는 걸까.
“배는…사람 머리의 정신과 사람 몸의 힘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 조선소에서 짓는 건 배가 아니었습니다. 배 꼴을 한 것. 그 조선소가 아니라 어느 조선소에서든 지을 수 있는 것. 마트 진열대 위에 놓은 수많은 공산품과 다를 것 없는 배였습니다” 여기에 ‘배’ 대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만들고 있는 제품을 대입했을 때 뜨끔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배를 만드는데는 관심이 없고...돈벌이들이 만들어주는 명패와 권세, 평안과 쾌락에 만족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직위와 늙음 안에서 안락했고..” 돈벌이가 되는 명패와 권세를 위해 홍보대행사에 거액을 뿌리고, 호화 전세기로 언론인을 모셔갔던 경영인의 모습이 겹쳐진다.
젊은 이들 역시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고속으로 늙어간다. 월급은 회사 다니며 욕보는 값이라 생각하고, 젊음을 끊어 팔아 월급을 받으며 늙어간다.


위에서 아래로 전염되는 바이러스 분수효과는 빠르고, 배(기업)는 그렇게 넘어간다. "넘어간 배는 썩도록 방치됐고, 썩은 다음에야 일으켰으며, 일으킨 다음에야 썩은 줄을 알았다."

넘어가고 썩은 건 배만이 아니었고, 소설속의 그 회사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선 B급 막장 영화 대접을 좀체 벗어나지 못했던 좀비영화가 '곡성'으로 '부산'으로 흥행했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좀비 싱크로'현상을 보는게 꼭 중년의 감정 과잉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부산행' 주인공 공유를 쫓는 수천 좀비들도 누군가의 애인 아내 남편 아빠 엄마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줄곧 공유보다 좀비들에 눈길을 줬다. 그 좀비들을 포함, 동서양 고금을 통털어 좀비들의 특징은 대개 이렇다.

△먹이가 유일한 행동의 동기이다.
△생각이 없다, (있는지 모르지만) 입 밖으로 말을 내지 않는다.
△목을 곧추 세우지 못하고 흐느적거린다.
△아무리 맞아도 버티고 견딘다.
△어제의 동료도 몰라보고 물어 뜯는다.
△청력이 유달리 발달해 무슨 소리만 나면 귀를 쫑긋한다.
△전에 어떤 사람이었건, 결국은 모양이 같아져 떼로 다닌다.
△(결정적으로)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다.

왠지 낯익은가.
내가,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도 이렇지 않나. 8개 항목중에 O표 3개 정도 나오면 섬찟한 일이다.
구성원을 좀비로 만들고, 구성원은 좀비로 살아야 편안한 곳이라면, 기업이건 정당이건 정부건 국가건 누워 버리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내가 누워 썩어버리지 않는 게 이상할 것이다.

("부모는 다 좀비입니다"
한 후배 기자의 말이다. 자녀라는 주술사에게 심장을 맡기고, 직장이라는 전쟁터에 나와, 팔이 잘리건 다리가 잘리건 가족을 지킨다는 미션만을 수행하는 좀비.
아파도 괜찮고 다쳐도 상관없는...하지만 자녀가 쓰러지면 살아갈 수 없는 좀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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