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친문 축제'로 끝난 더민주 전대, 결과유출 촌극까지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16.08.2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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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경선 결과 유출로 이종걸·김상곤 명예 못지킨 더민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2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 된 후 이종걸, 김상곤 후보와 악수를 하고 있다. 2016.8.27/뉴스1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2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 된 후 이종걸, 김상곤 후보와 악수를 하고 있다. 2016.8.27/뉴스1


"추·향·관! 추·향·관!"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결과가 27일 발표된 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일부당원들은 '추·향·관'을 외쳤다. '추·향·관'이란 추미애 당대표, 양향자 여성최고위원, 김병관 청년최고위원의 준말이다.

이미 전당대회 선거기간 때부터 '추·향·관'은 더민주 당원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돌고 있었다. 이번 당대표 및 최고위원 경선에서 세 사람을 지지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추 대표는 친문 진영 핵심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양향자·김병관 최고위원은 문재인 전 대표의 영입인사다.



그래서인지 '추·향·관'의 당선은 당내에서 당연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 현역 재선의원 유은혜 의원과 경쟁한 원외인사 양향자 최고위원의 당선 조차도 이변으로 불리지 않는다. 양 최고위원은 대의원 현장 투표에서는 47%를 득표했고 '친문' 성향이 강한 권리당원 ARS 투표에서 67%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더민주의 한 젊은 당원은 이번 경선 결과를 두고 '핵노잼'이라고 지칭했다. '하나도 재미가 없다'는 뜻의 신조어를 쓰면서, 이번 전당대회가 예상대로 흘러갔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핵노잼' 여부와는 다르게 당선된 인사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추미애 대표는 5선의 경륜을 가지고 있으면서 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야권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고졸출신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삼성전자의 임원이 된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다. 웹젠의 '벤처 신화' 김병관 최고위원은 야권 최초로 성남 분당갑에서 승리를 거둔 실력있는 인사다. 승리의 자격은 충분했다.

승리자들 못지 않게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패배한 후보들이다. 승리자들에게 꽃다발을 주는 만큼, 낙선 후보에게 진정성있는 위로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기품을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보여줬어야 한다. 그래야 전당대회의 감동이 배가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더민주 전당대회는 '기품'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당대회 결과가 정식으로 발표되기도 전에 한 언론사에 당대표 경선결과가 새어나가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추 의원과 경쟁했던 당 원내대표 출신의 이종걸 의원, 경기도교육감과 당 혁신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상곤 후보의 명예를 지켜주지 못했다.


다시 27일로 시계를 돌려보자. 전당대회 개표결과는 당초 오후 6시를 전후로 발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개표작업이 예상보다 늦어졌다. 이날 행사의 진행을 맡은 기동민 의원과 이재정 의원은 단상위에 오른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들과 즉석 토크쇼를 이어갔다. 후보들은 서로의 노고를 말하고, 경쟁자들을 추켜 세우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오후 6시20분 무렵, 김상곤 후보와의 즉석 토크쇼가 이어지던 순간 발생했다. 한 언론사가 추미애 후보의 당대표 당선 사실을 속보로 쓴 것이었다. 이후 봇물 터지듯 추종기사들이 이어졌다. 당측은 "어디서 확인한 내용인지 모르겠다", "발표까지 기다려달라"는 입장을 취했지만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모두 추 후보의 당선 속보를 앞다퉈 냈다. 김상곤 후보가 토크쇼를 하던 그 순간, 올림픽체조경기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낙선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대표 경선 결과 발표는 오후 6시50분쯤 이뤄졌다. 그러니까 약 30분 동안 이종걸·김상곤 후보의 낙선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채로 전당대회 행사가 이어졌다. 두 후보가 단상 위에서 뉴스를 확인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알았다면 기분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 두 후보의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제2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 된 뒤 당원들에게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2016.8.27/뉴스1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제2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 된 뒤 당원들에게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2016.8.27/뉴스1
당대표 경선 결과 발표는 의심할 필요없는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다. 숨죽인 가운데 투표율과 득표율이 공개되면, 후보자들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도 당선인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고, 당선인은 낙선자와 그 지지자들에게 위로는 건네는 모습이 연출돼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특정 언론에게 흘러들어가는 바람에 모두 틀어졌다. 낙선한 두 후보는 존중받을 기회를 잃고 약 30분 동안 말 그대로 '들러리'를 섰다.

더민주가 내년 이뤄질 대통령 후보 경선도 이렇게 밖에 관리를 못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더민주의 대선후보는 당의 모든 지지를 끌어 모아 여당 혹은 국민의당 후보와 경쟁해야 하는데, 이런식으로 낙선 후보의 명예를 존중해주지 못한다면 통합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추 대표는 당선사에서 "큰 주경기장을 만들어 공정한 대선 경선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추 대표의 '큰 주경기장'에는 반드시 낙선 후보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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