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대우조선 하나 못 죽이는 나라(2)

머니투데이 강기택 경제부장 2016.08.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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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대우조선 하나 못 죽이는 나라(2)


빚이 자산보다 많다. 특히, 1년 내에 갚아야 할 빚은 자산보다 5조5815억원 많다. 누군가 돈을 꿔 주지 않으면 곧장 망할 수 밖에 없으니, 바로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은 좀비기업이 어떤 폐해를 야기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뜨거운 상징’이다.



대우조선으로 인한 피해는 일차적으로 경쟁업체들이 입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유조선 2척을 수주했으나 은행들이 선수금환급보증(RG)를 꺼려 애를 먹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좀비기업이 정상기업의 앞길을 막아선 셈이다.

대우조선이 저가수주로 시장을 휘젓고 다니면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이 ‘수주공백과 저가수주’ 중 후자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정황은 더 이상 업계만의 비밀이 아니다.



대우조선으로 인한 자원배분의 왜곡은 경쟁업체 뿐 아니라 해운, 철강, 기계 등 여타 업종까지 영향을 미쳤다. 대우조선에 투입된 돈이면 살릴 수 있던 회사들이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경쟁업체 못지 않게 경영여건이 나빠진 곳은 대우조선에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선 은행들이다. 특히 수은 등 국책은행이 거덜나면서 정부도 자본을 늘려줘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대우조선이 발단이자 핵심인 기업 구조조정은 경제팀의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촉발한 계기도 됐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고 발언했지만 그에 따른 실행력은 빈약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문제를 놓고 한은과 불협화음을 노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업의 미래에 관한 어떤 청사진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 구조조정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을 했던 ‘서별관회의’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하면서 대우조선 문제는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됐다.

정부가 야당의 경제실정론 공세를 우려해 기피했던 '추경'은 '조선·해운산업 부실화 원인과 책임 규명을 위한 청문회'(서별관청문회)의 증인 채택 문제로 무산 위기에 처했다.

사실 대우조선이 원인인 일련의 일은 야당으로선 정치공학적 계산을 하고픈 유혹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추경집행이 늦어져 경제성장률이 더 떨어지고 거제, 울산, 목포 등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에서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건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의미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해당지역에 지역구 의원 없어 추경편성이 절실하지 않다. 정부의 잘못과 무능을 부각시키면 되고 그게 집권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대우조선의 부실은 경쟁업체, 은행, 정부, 정치권 등에 전방위적인 후폭풍을 낳았다.

정부가 국가경제적 파급효과를 감안해 대우조선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국내 조선소의 밑그림 그리는 것을 의뢰받은 맥킨지 역시 빅3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의 컨설팅 보고서를 내놓아 정부를 뒷받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우조선을 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조선업은 여전히 수주절벽을 겪고 있고, 대우조선은 완전자본잠식이 돼 추가로 산은이 출자전환 등을 통해 연명시켜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대우조선을 살린다고 해도 이런 현상이 앞으로 또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천신만고 끝에 대우조선을 정상화시켰다고 치자. 관료들은 헐값 매각시비가 두려워 주인 찾아 주는 걸 미룰 테고, 정치권은 최고경영자나 임원,고문 자리를 전리품처럼 차지할 것이다.

산은은 퇴직임원들을 내려 보내고 노조는 성과급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불황이 찾아 오면 4번째 공적자금이 들어갈 테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되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우조선을 살리겠다면 이런 데자뷔 현상의 고리를 끊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 그게 남은 과제다.

미국의 GM 구조조정 때처럼 구조조정에 대한 의사결정자나 집행자에게 면책권을 주고, 경영진도 바꿀 필요가 있다면 바꾸고, 썩은 부위가 있다면 도려내고, 자를 사람은 자르고, 팔 부분은 팔아야 한다.

그러면서 좀비기업 하나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비용을 한국사회는 치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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