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1500원 저가 커피의 그늘

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2016.08.1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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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1500원 저가 커피의 그늘


기자가 사는 집 앞 아파트 상가에는 이디야, 탐앤탐스, 쥬씨 등 10여 개 커피 프랜차이즈가 들어차 있다. 길 건너까지 합하면 커피전문점 15곳이 지척에서 치열하게 영업을 하고 있다.



최근 이곳에 희한한 풍경이 생겼다. 아메리카노의 1500원화(化)다. 상권 특성상 저가 커피브랜드가 많았는데, 어느샌가 1500원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판매하는 진짜 저가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견디다 못한 주변 커피숍들도 하나둘씩 '한정이벤트'를 내세워 아메리카노 가격을 1500원으로 낮췄다. 점포가 2곳 있던 이디야커피 중 한 곳은 아예 간판을 타 저가 프랜차이즈로 바꿔 달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가커피 유행이 반갑다. 불황 속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에게 1500원 커피는 한턱 낼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가 커피전문점 열풍 이면에는 퇴직자들의 팍팍한 삶이 숨겨져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2014년 현재 1만2000여개로 전년대비 42% 증가했다. 특히 '빽다방' 등 저가 커피전문점 성장이 가파르다.

그러나 저가 커피전문점도 창업비용은 저가가 아니다. '빽다방'의 경우 39㎡(12평) 기준 매장 창업에 보증금, 월세 등을 제외하고 1억원이 훌쩍 넘게 든다. '박리다매' 영업 특성상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해야 해 월세비용도 만만찮다.

더 큰 문제는 수익률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아메리카노가 1500원이다보니 하루 700잔을 팔아도 본전찾기 힘들다. 비용을 아끼려고 본인과 가족이 일하고, 아르바이트생을 1~2명만 고용하다 보니 은퇴 후에도 노동강도가 높다. 그나마도 적자를 면치 못하면 폐업의 길로 접어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을 포함한 음식점 업종의 1년 생존율은 55.6%로 1년 내 두 곳 중 한 곳은 폐점했다.


시장경쟁 체제에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지만 커피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는 이들이 대부분 은퇴세대라는 점에서 쉽게 넘기기 어렵다. 저가만 찾다가 결과적으로 내 부모님, 내 삶이 팍팍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유통단계가 존재한다.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려면 적정수준의 마진이 필요하다. 저가, 가격파괴 아이템만 찾다가는 유통구조가 무너지고 그 안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의 일자리도 사라지게 된다. 저가커피 이면에 숨은 자영업자들의 눈물을 헤아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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