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권리' 인정받고도 억울한 리쌍…강제집행이 답일까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이경은 기자, 김종훈 기자 2016.07.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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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살롱<123>] 힙합가수 리쌍, 건물 내 곱창집에 강제집행

7일 오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힙합듀오 '리쌍'이 소유한 건물에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임대 계약 문제로 마찰을 빚었던 곱창집 '우장창창'이 법원의 퇴거 강제집행을 막고 있다./ 사진=뉴시스7일 오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힙합듀오 '리쌍'이 소유한 건물에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임대 계약 문제로 마찰을 빚었던 곱창집 '우장창창'이 법원의 퇴거 강제집행을 막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7일 오전 6시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100여명이 모였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상가세입자 모임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원 수십명이 맞섰습니다. 이 상황은 힙합가수 '리쌍'이 소유한 건물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두 집단은 충돌했고, 포크레인이 등장했습니다. 소화기가 뿌려졌고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4시간에 걸친 충돌 끝에 남자 100여명은 철수했습니다. 현장은 소화기 분진과 잔해, 쓰레기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집행11부는 이 건물에 위치한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한 강제집행을 실시했습니다. 법원 집행관의 직권 선언으로 집행은 우선 중지됐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강제집행이 실시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소송·합의·소송…'우장창창' 무너진 임대·임차인 관계



이 갈등은 4년 전 시작됐습니다. 맘상모 등에 따르면 우장창창의 주인 서윤수씨(39)는 2010년 11월 이 건물 1층에서 가게를 열었습니다. 권리금 2억7500만원에 시설투자비 1억1500만원을 들였습니다. 2년간 장사하는 조건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리쌍은 2012년 이 건물을 사들이고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습니다. 서씨는 "이전 건물주에게 계약 연장을 약속받고 막대한 돈을 들였다"며 반발했습니다. 싸움은 법정까지 이어집니다.

소송 도중 이 사건 당사자가 리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갑질 논란'으로 들끓였습니다. 리쌍은 서씨에게 1억8000만원을 주고 지하 1층과 지상주차장에서 영업하도록 허락해주는 조건으로 합의했습니다. 이미 1심에서 이겨 항소심 중이던 리쌍으로선 적지않게 양보한 셈입니다.


이후 서씨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별도의 용도변경 없이 주차장에서 천막을 치고 곱창집 영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서씨는 '주차장을 용도변경해 영업할 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합의문 내용을 들면서 이를 지키라고 요구하지만 리쌍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서씨는 2014년 1월 합의문 내용을 이행하라며 재차 소송을 냅니다. 리쌍은 서씨가 주차장에 천막을 치는 등 불법행위를 해 구청으로부터 철거 통보를 받았다며 똑같이 소송으로 맞섰습니다. 리쌍은 소송 중이던 지난해 9월 임대차 계약을 연장할 생각이 없다며 지하 1층 공간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원, 리쌍 승소 판결…"서씨가 합의 위반했다"

결과는 서씨의 패소였습니다. 양쪽 청구를 모두 기각한 1심과 달리 2심은 지하 1층과 주차장 공간 모두를 리쌍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습니다. 리쌍은 이 판결을 근거로 강제집행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주차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발생하는 민원은 서씨가 책임진다'는 합의내용을 근거로 리쌍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서씨가 과거 리쌍과 합의할 때 영업 중 생기는 모든 법적 책임을 부담하기로 약정했다"며 "구청의 통보에 따라 리쌍이 불법 구조물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는데도 서씨가 불응해 리쌍이 피해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지하 1층 공간에 대해 재판부는 서씨가 정해진 기간 내에 계약을 연장해달라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므로 계약을 연장할 이유가 없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서씨가 이 사건 임대차계약 만료 전 6개월부터 1개월 사이 리쌍에게 명시적으로 계약갱신을 요구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전혀 없다"며 "서씨가 내심 계약갱신을 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의사가 리쌍에게 표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당한 권리 얻고도 억울한 리쌍

판결이 나오자 여론의 화살은 리쌍을 향했습니다. '연예인 신분을 이용해 갑질을 한다',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자영업자를 핍박한다' 등 감정섞인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따졌을 때 리쌍은 정당한 판결을 받아냈다고 봐야 합니다.

당시 상가임대차법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에게 계약을 끝내거나 바꾼다고 알리지 않으면 기존 조건대로 5년까지 계약을 연장케 하는 보호조항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 조항만 따지면 서씨가 이겨야 했을 소송처럼 보이죠. 다만 '환산보증금'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환산보증금은 임차인이 내던 월세에 100을 곱한 액수와 보증금을 더해 계산합니다. 임차인은 환산보증금이 기준보다 적어야 상가임대차법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당시 서울 지역에 적용된 기준 액수는 3억원이었습니다. 월세 300만원, 보증금 4000만원에 전 건물주와 계약한 서씨 가게의 환산보증금은 3억4000만원으로, 보호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상가임대차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법이 상가에 세를 드는 영세상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것은 맞지만, 임대인의 권리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서울에 적용되는 환산보증금 기준이 4억원으로 완화되는 과정에서 법조계에선 "건물주의 소유권 행사와 계약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 "환산보증금 제도 실효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당한 권리를 확인받았을 뿐인데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니 리쌍은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은 강제집행 계고장을 2번이나 보내 퇴거 시한을 5월30일로 정했지만 서씨는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가게에서 생활하며 강제집행에 대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곱창집에 생계가 달려있는 서씨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리쌍으로선 '막무가내'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야기하자" 서씨 아우성…'강제집행'이 정답일까

강제집행 현장으로 돌아와보겠습니다. 서씨 등은 강제집행이 중단된 후 리쌍 멤버 개리(35·본명 강희건)의 집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서씨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맘상모는 "법원 판결 이후 리쌍과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리쌍에게 대화 좀 하자고 수차례 이야기했다"며 "연예인이라 만나기도 힘들다. 용역 100여명과 포크레인이 대답으로 돌아왔다"고 토로합니다.

리쌍은 강제집행 과정에서 "계속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강제집행이 언론에 보도된 후에도 특별한 해명이나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서씨 때문에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법원 판결로 권리를 확보하고도 대화에 나서려 하지 않는 리쌍의 대응은 조금 아쉽습니다. 그동안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한 점은 대중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강제집행이 마지막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 방식을 배제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법원은 리쌍이 요청하면 다시 강제집행을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서씨와 맘상모, 용역인력은 또 충돌하겠죠. 이에 앞서 양측이 대화를 통해 입장 차를 좁혀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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