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국민연금은 '강 건너 불구경?'

머니투데이 이코노미스트실 2016.06.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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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칼럼]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지난 수년간 지속된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심각한 적자와 부실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이 시장논리가 아닌 정부와 정치권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구조조정이 관 주도로 이뤄진 이유는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수출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과 자율협약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경우 기업이 수조원 대의 적자가 누적돼야 비로소 구조조정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국책은행 담당자는 대부분 2년 정도 자리를 지키다 다른 부서로 옮기기 마련인데 어느 누가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수동적인 관리를 하다 조용히 업무교대를 하는 것이 준 공무원 신분으로서 안전한 선택이다.



이런 현상이 누적되다보니 금융시스템 전반을 망가뜨릴 정도까지 구조조정 재고가 쌓이게 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구조조정 대상기업만 34개에 이른다. 한꺼번에 정리하자니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휘청거릴 정도다. 이에 정부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특단의 방안까지 강구 중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을 책임지는 시스템에서는 어느 누구도 선도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고 기업의 부실이 상당히 진행돼야 비로소 구조조정 절차가 시작되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가 곪을대로 곪고 나서야 정부가 뒤처리하는 과정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궁극적인 해결책은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논리대로 자금을 투자하고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나 구조조정 펀드를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 투자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구조조정 시장은 투자자에게 수익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처를 제공한다. 게다가 현재와 같이 한꺼번에 구조조정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수익성 높은 투자 발굴의 기회도 많아진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기업매물을 인수하거나 기업가치를 올리는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펀드가 많다. IMF 외환위기 당시 골드만삭스는 진로, 대한통운 등 회생기업 무수익채권(NPL) 투자로 큰 수익을 낸 바 있다.

최근에는 투자자산 137조원 규모의 글로벌 사모펀드(PEF)인 KKR의 공동 창립자이자 공동 대표인 조지 로버츠 회장이 방한해 조선·해운 등 한국의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이 좋은 투자기회가 됨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민연금 등이 구조조정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연기금의 재정을 튼튼하게 하면서 건강한 시장 시스템을 만들어 국민경제 체질을 강화할 수 있다. 한국은행까지 동원하려는 마당에 국민연금 등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뒷짐만 지고 있어선 곤란하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구조조정 전문펀드의 역사가 일천하고 그 수가 많지 않아 연기금의 토종 펀드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IMF때처럼 해외 투자가들이 구조조정의 과실을 따가게 하는 건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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