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화학물질 포비아(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 집계로 143명, 환경보건시민센터 집계로 239명의 사망자를 낸 전대미문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검찰 수사로 재조명되면서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옥시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30~40% 급감한 표백제와 제습제 외에도 화학물질이 포함된 생활용품 매출이 전반적으로 줄었다"며 "제품 성분을 꼼꼼히 따져보거나 천연성분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생활용품 대신 식초, 베이킹소다, 구연산 등 천연성분을 활용해 기존 세정.탈취제를 대체하겠다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직장인 전수민씨(40)는 "아이 방에 있던 가습기를 버리고 수건을 적셔 습도를 조절한다"며 "주방세제는 100% 천연제품으로 바꿨고 화장실 청소도 치약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5년 만에 재점화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국민들의 공분과 함께 사회 전체 공포로 이어진 근본원인은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인체에 유해한 제품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아무런 규제없이 10년 이상(2001~2011년) 판매돼 피해를 키웠다.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2011년 확인하고도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기까지 5년이나 걸린 것과 관련,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최근 환경부가 살생물제(항균·방균제 등 원하지 않는 생물체를 제거하기 위한 제조물)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뒷북 조치라는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가 유해성 여부를 가려내고도 철저히 관리·감독하지 않아 피해자를 양산한 만큼 제2의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라는 해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경험하면서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정서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며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국민들의 불안감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