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사유지에 몰래 전봇대 설치한 한전

머니투데이 채원배 부장 2016.04.3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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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사유지에 몰래 전봇대 설치한 한전


20여년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인 일을 기사로 쓴 적은 없는 것 같다. 의료 사고 등 기사 가치가 있는 사례도 있었지만 사심이 들어가는 글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전력으로부터 겪은 일은 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유지에 주인 몰래 전봇대를 세웠고, 잘못을 하고도 변명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유지는 기자의 아버지 땅이다. 대구 변두리에 있는 이 땅은 현재 전답이고, 오랫동안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다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바뀐 곳에 위치해 있다.



아버지로부터 '한전이 몰래 전봇대를 세웠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시대에 사유지에 주인 동의 없이 전봇대를 세웠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아버지는 한전 동대구지사에 가서 항의하고 바로 철거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한전측은 알아보겠다고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자는) 한전 출입기자를 통해 한전측에 경위를 알아보고 빨리 철거해 줄 것을 재차 요구했다.

그런데 한전 홍보실 관계자는 기자가 민원을 제기했다고 판단한 듯 "서둘러 처리 안 해 줘도 되는데 조치를 해주겠다"며 선심 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동대구 지사에 알아본 결과 '전봇대가 설치된 곳이 사유지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곳'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사과를 하고 빠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하기는 커녕 기자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생떼를 쓰고 있다는 뉘앙스로 얘기한 것이다. 한전의 태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혹시 길에 설치한 것을 아버지가 잘못 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에게 재차 물었다. 아버지는 "(한전이) 잘못해 놓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어이없어 했다.



한전 동대구지사 관계자는 뒤늦게 현장을 확인하고 사과했다. 그는 "협력업체에 전봇대 설치를 맡겼는데, 협력업체 직원들이 사유지를 길이라고 잘못 판단해 실수를 저질렀다"며 "곧바로 철거해 주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겪은 일을 이처럼 장황하게 거론한 것은 한전이 다시는 이런 횡포를 (고객이나 지역 주민들에게) 부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 후 보여준 한전의 태도는 안하무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력은 회사 홈페이지에 "(고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며 "한전인은 고객존중과 소통화합 등 5개의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전에게 고객 존중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고객의 말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고, 잘못한 것은 곧바로 시정하는 자세라도 가졌으면 한다.

2008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의 전봇대를 질타하면서 전봇대는 규제의 대명사가 됐다. 8년여가 지난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아 보이는 한전이 시가총액 2위 기업이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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