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광부' 닭집 사장님 "손님 0명"…'폐광촌의 그늘'

머니투데이 정선(강원)=김지훈 기자 2016.04.30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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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도시재생이 필요한 이곳] <上> 정선 폐광지역 주민들 깊어진 시름…'도시재생' 필요성 절실

정선 사북시장. /사진=김지훈 기자정선 사북시장. /사진=김지훈 기자


강원도 정선 사북에는 강원랜드의 리조트 명과 같은 '하이원'이란 이름의 거리가 있다. 한적한 2차선 도로가 지나는 이 거리 인근에 한때 사북의 광부들과 그 아내들로 붐볐던 '사북시장'이 있다.

27일 오후. 20여 개 점포가 간판을 마주하고 서 있는 이 시장 통로는 적막했다. 고추 방앗간, 생필품점, 닭고기 가게 등에 찾아온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루에 전혀 못 팔 때도 있어요. 어떨 때는 5만 원 팔 때도 있고요. 광부들이, 그들의 가족이 이곳에 함께 했을 때가 좋았지요."

전직 광부이자 닭고기 가게 사장인 A씨(73)의 말이다. 그는 30여 년 전 광부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찾아 이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근래 들어 '닭집' 간판 아래 재래김, 바나나, 다시마, 황태 등 판매 품목을 계속 늘리고 있다. 닭이 안 팔려 대체 수입원을 찾아 나선 셈이다.



사북·고한 등 강원랜드 인근 지역 주민들은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 제정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숨을 내쉰다. 강원랜드의 설립 근거가 된 폐특법 도입 이후, 폐광 지역민들이 기대했던 경제적 효과는 창출되지 않아서다. 카지노를 중심으로 돈이 돌지만, 카지노 방문객은 지역 상권과 긴밀히 관계돼 있지 않다는 지역민들의 하소연도 잇따른다.

심지어 강원랜드 카지노 인근 전당포마저 불황이다. 이날 '임대문의' 표지를 붙인 전당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블록에 3개가 나란히 임대를 내놓은 전당포가 있을 정도였다. '앵벌이'라 불리며 주변 모텔, 찜질방 등에서 기거하는 도박 중독자들이 줄어든 것이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각종 '캐피탈'이란 이름이 붙은 대부업체들이 늘어나면서 대부시장도 경쟁 격화에 휘말린 셈.

마사지가게와 전당포가 밀집한 사북의 거리. /사진=김지훈 기자 마사지가게와 전당포가 밀집한 사북의 거리. /사진=김지훈 기자
"전당포를 하는 사람들은 돈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담보로 한 대출의 경우 7~8년 전까지는 통상 대출금의 10%를 월 이자로 받았지요. 하지만 근래엔 규제 강화 등으로 4~5% 수준까지 낮아졌어요. 이제 차를 담보로 받아도 감당이 안 되니 '주차비'도 함께 달라고 할 정도예요."


8년 전 이 거리에서 전당포를 하다가 대리운전사업으로 종목을 바꾼 B씨(61)의 말이다. 그는 자신도 종종 대리운전을 뛸 만큼 '생존'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수많은 탄광이 폐광했다. 2004년 동양 최대 민영 탄광이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폐광을 마지막으로 정선 탄광역사도 막을 내렸다. 대신 사북·고한 등지에 전당포·마사지업소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2001년 강원랜드 개장 이후 카지노 방문객을 위한 전당포들이다. 마사지업소 가운데는 퇴폐행위를 하는 곳도 있다.

"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부모님께서 걱정하세요. 호기심을 가지고 자칫 탈선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크죠." 이날 거리에서 만난 사북고 2학년 재학생의 말이다.

과거 탄광의 흔적을 박물관 등 관광시설로 변경시킨 동원탄좌나 삼척탄좌정암광업소를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삼탄아트마인 등은 탄광을 지역 관광사업과 연계한 사례다. 하지만 정선의 경우 아직 '도박의 도시'라는 인식은 걷히지 않았다.

옛 동원탄좌 수갱. /사진제공=강원랜드옛 동원탄좌 수갱. /사진제공=강원랜드
"창립 이후 강원랜드가 벌어들인 돈 가운데 국가 및 지역에 투입한 각종 세금, 폐광기금, 관광 진흥기금, 사회공헌기금은 모두 합쳐 10조 5000억 원에 이릅니다. 그런데 투입된 돈만큼 이 지역이 획기적으로 발전했을까요?"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이사 역시 지역민, 상권의 불만에 대해 통감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강원랜드 컨벤션호텔에서 열린 ‘좋은 만들기 포럼’ 기조연설에서 '도시재생'의 화두를 던졌다.

포럼은 '도시재생'을 위해 관 주도의 개발이나 지원과 거리를 두고 정부·기업·지역이 하나 되어 지역을 살릴 방안을 찾는 자리였다. 지역주민, 도시재생 전문가, 정선군 관계자, 강원랜드 임직원 등 500여 명이 찾았다.

강원랜드의 '하나의 마을 만들기' 시도에 폐광촌 주민들도 귀를 기울였다. 지역민들의 방문이 예상보다 많아 임직원 일부는 포럼 행사장 바깥으로 자리를 내 줘야했을 정도였다. 포럼 전문위원인 이용규 산업문화연구소 소장, 구자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등이 폐광지역의 문제와 미래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 20년간의 성과와 문제점을 반성하고 새로운 지역재생의 방안을 모색해 볼 때입니다.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목표지향적인 도시재생이 필요하죠. 재개발, 재정비 등을 뛰어넘어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해요."

최근 지역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강원랜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문제를 지적한 이 소장의 말이다. 일본 비영리재단(NPO)인 마찌즈쿠리클럽 이사장인 카오루 야마시타는 이날 포럼에서 지역 상인들을 중심으로 옛 에도시대를 재현한 관광 거리 조성에 성공한 카구라자카를 도시재생의 한 사례로 들었다.

"좋은 발전 방향을 제시해서 더 이상 광부들을 그리워하지 않게 되면 좋겠지." 자식들을 일찍이 서울로 유학 보내고, 거리를 지켜온 닭고기집 사장 A씨는 덤덤하게 말했다.

"강원랜드가 공생을 위해 나아가려는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지역 사회의 유지들뿐 아니라 주민들의 많은 생각을 수렴해 비전을 만들어나가기를 바랍니다." 밤이 되면 대리운전 사무실 불을 켜는 B씨도 한몫 거들었다.

1986년 입사해 2004년 폐광까지 동원탄좌와 고락을 함께한 전주익 사북석탄유물보존위원회 운영기획팀장도 기대감을 표현했다.

"50여 년간 탄광으로 하나가 됐던 지역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지역색이 없어지고 정체성이 없어지는 부분들을 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을 만들기'의 중심에 우리의 정체성이었던 옛 석탄산업에 대한 조명이 있어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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