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디올 '한국여자'는 연작 일부"…협의 없는 철수 '유감'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2016.04.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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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 이완 작가…"여성혐오·차별적 시선 반대 …관객해석 인정하나 내 의도인 듯 여론몰이는 문제"

이완 작가가 지난해 광주 충장로에서 촬영한  '한국여자'. 같은 이름의 연작으로 청담동 디올 플래그십 매장에서 열린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전에 출품됐으나 지난주 강제 철수됐다. /사진제공=이완이완 작가가 지난해 광주 충장로에서 촬영한 '한국여자'. 같은 이름의 연작으로 청담동 디올 플래그십 매장에서 열린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전에 출품됐으나 지난주 강제 철수됐다. /사진제공=이완


'한국여자'가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미술계에서 촉망받는 신예 작가 이완(37)이 최근 프랑스 고급 패션브랜드 디올이 개최한 현대미술전시에 출품한 사진 얘기다.

이완은 민간 최고의 권위로 꼽히는 신예 발굴 프로그램인 2014년 '아트스펙트럼전'(삼성 미술관 리움)참여 작가다. 그해 처음 제정된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단독 수상하는 등 평단의 집중 조명을 받은 현대미술가다.



이완은 그러나 최근 서울 청담동 디올플래그십매장에서 열린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전에 '한국여자'를 출품하면서 도마에 올랐다.

이완 작가.이완 작가.
그가 지난해 촬영한 '한국여자'는 '놀이터 룸 소주방', '57파티타운' 등 간판이 붙은 건물들 앞에 검정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디올백을 메고 선 모습이다.



이 사진은 인터넷 커뮤니티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여성 비하 의도의 작품이란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서울 청담동 디올플래그십 매장에 전시 중이던 '한국여자'는 작가와 사전 협의 없이 철수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시회 출품작의 '강판'은 작가에게도 상처다. 이완에게 작업 의도와 심경을 물었다.

- 작품에 나온 '놀이터 룸 소주방' 등 간판이 있는 장소가 '유흥업소 여성들의 일터같다'는 시각이 많다. '명품을 갖기 위해 성매매 한다'는 해석도 나와 결국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 그 곳은 입주했던 '레지던시'(작가 입주 프로그램)가 있는 광주 충장로, 번화가다. 지난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광주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했다. 서울 이화여대 앞이나 홍익대 앞처럼 젊음의 거리이자 패션·쇼핑 거리다.

사진 속 룸이나 소주방이란 이름이 붙은 업소가 오해를 빚은 것 같다. 젊은이들이 방(룸) 안에 들어가 노래를 하며 소주를 마시는 곳이지 유흥업소 여성들이 일하는 곳이 아니다. 그 거리에 소주방이 많다.

- 어깨를 드러낸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디올백을 메고 충장로에 서 있는 콘셉트는 어떤 의미인가 .

▶광주는 작품 제작 시기 내가 생활한 곳이다. 촬영을 위한 번화가를 고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충장로로 잡았다.

'한국여자'는 디올이 지닌 사회학적인 측면을 건드리려 했다. 디올백을 사는 것은 어떤 (사회) 계층의 이미지를 사는 것으로 본다. 경쟁 압박과 생존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의 젊은 여성이 성공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디올백으로 자신을 드러낸 모습이다. 저렇게 하고 친구나 애인을 만나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광고에 흔히 나오는 화려한 배경 속에 저 여성이 서 있다면 작품으로서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다른 판타지로만 받아들여질 것이다. 패션잡지에 행인들 패션이 소개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모티브로 했다.

- (작가가) 여성을 혐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작품을 할 때 그런 관점을 갖지 않았다. 여성혐오나 차별적인 시선에 반대하며 소수자들도 인정한다. 어떠한 상황에도 예술은 누군가의 권리나 차별 혐오 등으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

이완의 '한국여자' 연작 가운데 민속촌 구미호 역할 아르바이트생인 여성을 담은 작품. /사진제공=이완이완의 '한국여자' 연작 가운데 민속촌 구미호 역할 아르바이트생인 여성을 담은 작품. /사진제공=이완
'한국남자' 연작 가운데 걸인 복장 차림의 역할 아르바이트생 남성을 담은 작품. /사진 제공=이완'한국남자' 연작 가운데 걸인 복장 차림의 역할 아르바이트생 남성을 담은 작품. /사진 제공=이완
- '한국여자'라는 작품명을 붙은 이유는.

▶'한국여자'는 연작의 이름이다. '한국여자'뿐 아니라 '한국남자', '상품', '노동자'하는 식으로 이름을 붙여 작품 대분류를 규정했다. '한국여자'의 분류 안에 민속촌에서 '구미호' 역할 아르바이트에 나선 여성이 담긴 사진도 있다. '한국남자' 연작에는 마찬가지로 민속촌에서 걸인 역할 아르바이트하는 남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다. 걸인 차림을 한 아르바이트생의 사회적 위치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 '한국여자'에 대한 디올의 반응은 어땠나.

▶이번 전시는 디올 프랑스 본사의 주도하에 기획된 것으로 본사는 내 작품이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었는지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보았다. '한국여자'에 대해 디올 본사는 우호적 반응이었다. 작품도 디올 본사가 매입했다.

디올 한국 지사가 본사에 의견을 강하게 제시했고, 본사가 작품 철수를 허락한 것으로 들었다. 나와 사전 협의 없었다. 지난주 내 작품이 전시에서 철수됐다는 사실을 디올이 아니라 네티즌의 트위터로부터 알게 됐다.

이완 작가의 '상품' 연작 가운데 가격표가 붙은 자유의 여신상 조형물을 담은 작품. /사진제공=이완  이완 작가의 '상품' 연작 가운데 가격표가 붙은 자유의 여신상 조형물을 담은 작품. /사진제공=이완
- 여성 모델 사진과 배경을 자의로 합성한 것이 맞나.

▶ 낮과 밤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 배경 각 부분을 합성시킨 것이다. 원본이 된 인물과 배경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초점을 한 군데밖에 맞추지 못하는 일반 사진과 달리 모든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또 낮인 배경에 밤에 불이 켜진 간판의 모습을 합성시켜 전체적으로 불분명한 시간대를 만들었다. 작품 전반에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경직된 느낌을 불어넣으려는 목적에서다. 보기 좋고 예쁜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기보다 사유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한 태도다.

- 작품 속 여성은 누구인가.

▶ 평범한 대학생을 섭외했다.

- 여대생이 여성 혐오 논란 작품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셈이다.

▶ 작품 속 주인공이 된 당사자는 여성 혐오적 시각을 드러낸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 이번 사태에 대한 심경은.

▶한 명의 작가로서 작품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받아들이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해석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내 작품이 여성 혐오주의적 시선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여론몰이 되는 문제는 다 함께 고민해봐야 할 같다.

나와 협의 없이 작품을 내린 것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 유감이다.

크리스챤 디올은 지난 12일 "이완 작가의 작품에 대한 논란으로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라며 "여성의 진취성을 강조하고 자존감을 북돋우며 여성에 대한 존경과 권위신장을 위한 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라는 사과의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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