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과학]인공지능과 같이 살려면

머니투데이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2016.03.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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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대 4로 패하면서 역사적인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바둑 대결이 막을 내렸다. 잔치는 끝났지만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일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누가 이길 것인지 예측했었다. 이 9단이 4대 1 정도로 이길 것이라는 것이 내 추정이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박사과정 때 인공신경망을 훈련 시켜 은하를 분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잠깐 공부를 한 적이 있다. 또 바둑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서 네덜란드 바둑 클럽에 다닌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인공지능이나 바둑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4대 1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내가 신뢰하는 지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 지식의 범위가 허락하는 만큼 조사하고 사고한 직관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내 예측은 크게 어긋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 비관적이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더 좋든 싫든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고 어느 순간(특이점) 인간의 의지와 결정권을 그들에게 다 내어줘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멸종 방식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특정해서 멸종시키는 방식은 아닐 것 같다. 가령 길을 뚫는 데 커다란 모래 언덕이 있어서 그 모래 언덕을 제거하다 보니 개미들이 죽어 나가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일을 하다 보니 인간이 휩쓸려 사라져 버리는 방식의 멸종이 좀 더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공지능과 상생할 방법은 없을까.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8편에서 이오니아 학파의 전통을 인류가 일찍 받아들였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 후 그런 세상을 상상해 보였다. 과학이 더 발전되고 상식이 더 넘쳐나는 세상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중요하다.


이오니아 학파의 전통을 외면하면서 긴 암흑기를 거쳤던 과거를 답습할 것인지 새로운 여명의 시대를 열 것인지의 기로에 놓여 있다. 알파고 직관은 사실상 계산의 결과다. 직관력을 높이는 것은 더 상식적이고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라는 것을 실천해서 보여준 것이다. 인공지능의 객관적인 직관을 학습하는 태도가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과 공존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필요충분조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딥마인드에서 알파고 알고리즘을 과학자들의 대형 실험 자료로부터 의미 있는 시그널을 편견 없이 찾아내는 작업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알파고를 개발한 데이비드 허사비스가 자신의 연구를 냉정하게 제어할 윤리위원회 설치를 구글 측에 요청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가 개발한 게임 중에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전술전략을 구사하는 소셜 게임도 있다. 허사비스는 인공지능을 통해서 더 상식적이고 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 같다.

아직은 인공지능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인간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인간의 가치관을 그들의 본성으로 심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다. 어떤 가치관이냐에 따라서 인공지능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고 인간의 미래도 같이 결정될 것이다. 인공지능과의 관계 설정을 위한 인간들끼리의 싸움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멸종이냐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남느냐를 향한 싸움이다. 나는 허사비스의 태도를 지지한다. 생존을 위한 포석으로 그의 태도를 화점에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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