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품숍 연 女사장님…"50~70대 동네주민들 좋아해"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2016.03.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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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에 '플레져랩' 연 전직 기자·간호사 "월매출 4000만원"

플레져랩 외부 모습플레져랩 외부 모습


"눈 세 개 달린 변태 괴물만 찾아오는 곳 같진 않죠?"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한 상점에 조심스레 노크를 했다. 외관은 합정동 일대 여느 편집숍 같았고 내부로 발을 들여도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쪽 진열대에는 국내·외 서적들이 줄지어 있어 얼핏 예쁜 소품가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플레져랩'. 상점 이름부터 즐거움이 느껴지는 이곳은 성인용품 전문 매장이다.



플레져랩플레져랩
◇"찾다 찾다 못찾아서 내가 차린 집"
"여성 성인용품을 외국에서 처음 접하고 한국에 돌아와 알아봤더니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대부분 남성 중심의 성인용품숍들은 불쾌하고 무서워서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최정윤·곽유라 공동대표가 플레져랩의 문을 연 이유다. 최 대표는 미국에서의 대학 생활 중 컵케이크가게인 줄 알고 들어간 매장이 성인용품숍이었다. 그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게 한 스텝이 다가와 손에 진동기를 쥐어 줬다. 얼떨결에 제품을 하나 샀고 즐거움을 얻게 된 후 그 가게에 자주 놀러갔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던 곽 대표는 외국의 신기한 가게를 찾아 다녔고 성인용품숍도 그 중 하나였다. 곽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서 여성 성인용품을 사려고 했는데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인터넷에서 판매됐고 오프라인 가게의 남자 사장님은 '여자가 왜 이런 걸 써? 남자친구가 이런 거 쓰면 좋아 할거야?'라고도 했다"고 토로했다.

갇혀있어야만 했던 '성인용품'에 대한 갈망은 서로를 만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같은 여성소비자도 있는데 왜 성인용품숍에는 남자들의 판타지만 있을까? 우리나라 여성들은 즐겁게 자기 욕망을 찾을 곳이 없을까?"

프리랜서 외신기자였던 최 대표와 간호사였던 곽 대표는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평범한 여자도 성인용품을 쓴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응원도 있었지만 걱정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여자들이 이런 것들을 살 것 같냐', '성인용품은 남자가 본인의 즐거움 위해 사서 파트너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확신은 있었다. 이들 스스로가 소비자였기 때문에 여성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갤러리나 백화점처럼 매장을 꾸며 성인용품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자는 게 이들의 전략이었다.

/사진=플레져랩 홈페이지/사진=플레져랩 홈페이지
전략은 성공했다. 온·오프라인을 합친 월 매출은 4000만원 수준. 이달 말에는 신사동 가로수길에 플레져랩 2호점도 오픈한다. 1호점이 여성을 위한 성인용품숍이라면 2호점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생각이다.

최 대표는 "최근에는 해외 셀러나 제조사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가게 사진을 보고 먼저 연락을 해온다"며 "너희들처럼 예쁘게 한 곳은 처음이라며 본인들의 물건을 전시하고 싶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취향 저격한 성인여자들의 장난감 가게
대게 성인용품숍이라고 하면 허름한 건물에 온 유리가 비밀스럽게 스티커로 가려져있지만 이곳은 다르다. 유럽풍으로 꾸며진 가게 안에는 여러 종류의 성인용품들이 고급스러운 악세사리처럼 진열돼 있다. 각 제품들을 설명하는 최 대표의 손놀림은 거리낌 없이 당당했다.

이들은 "매장에 진열된 물건들은 여성으로서 내가 직접 써보고 쓰고 싶은 제품인지 고민하고 선별·수집해 놓은 제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성인용품들은 기본적으로 유럽내 유통인증인 CE 마크와 전자파 인증 KC 마크를 받은 제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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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들은 적나라한 디자인부터 립스틱이나 목걸이 등 미용도구 모양을 하고 있는 상품들도 있다. 두 대표는 제품 판매 외에도 스스로 공부를 하고 전문의 자문도 받아 성상담을 한다.

최 대표는 "그동안 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왔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일요일에는 프라이빗쇼핑처럼 예약제로 상담을 한다.

무료 세미나를 열거나 성에 관련된 토크행사를 갖기도 한다. 제품을 팔기 위해서가 아닌 건강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15명 정도의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2~3시간이면 마감된다.

하지만 여성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문제도 생긴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가게 내외부에 CCTV와 휴대용 비상벨 등을 곳곳에 설치했다.

물론 대다수는 여성 대표가 운영하는 '성인용품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최 대표는 "가게를 열었을 땐 사람들이 우릴 어떻게 볼까. 불쾌해 하진 않을까 했는데 동네주민들 특히 50~70대 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하신다"며 "기성세대라고 성인용품숍을 무조건 음란하고 불쾌해 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플레져랩의 최정윤·곽유라 공동대표/사진=플레져랩 홈페이지플레져랩의 최정윤·곽유라 공동대표/사진=플레져랩 홈페이지
◇여전히 존재하는 벽, 그리고 포부
다만 사업을 확장시키는데 있어 여전히 장애물은 있다. 얼마 전 이들의 블로그가 차단당했다. 청소년 유해 사이트라는 이유에서다.

곽 대표는 "청소년 보호를 위해 어떤 장치를 해야하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성인용품'이란 단어는 모두 음란하고 불쾌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오히려 이런 행정편의적 제도가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닫아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초기자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시 자본이 부족했던 이들은 성인용품이 향락업으로 분류돼 있다는 이유로 금융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자신들이 모아둔 돈에 부모님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만큼 앞으로도 힘든 여정이 남아있지만 이들에게는 꿈이 있다. 여전히 음지에 가려져 있는 성인용품 시장을 양지로 끌어올려 대중화 하겠다는 것이다.

곽 대표는 "여성들이 성적 기쁨을 찾는 걸 두고 일각에선 '문란하다'거나 '음란하다' 등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많다"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인식들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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