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중 99명은 걸린다?" 난폭운전 새 규정 논란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2016.02.1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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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운전 처벌 오늘부터 시행… 의도는 공감하지만 부작용 우려

"100명중 99명은 걸린다?" 난폭운전 새 규정 논란


#A씨는 차를 몰고 사거리를 지나려던 찰나 노란불로 바뀌었다. 급한 마음에 속력을 내서 사거리를 건넜다. 당시 속력은 시내 속도 규정인 80㎞를 훌쩍 넘었다.



A씨는 신호위반일까? 난폭운전일까? 기존에 A씨는 신호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받았을 것이다. 12일부터는 난폭운전으로 분류될 수 있다. 신호위반과 과속 등 교통규칙 2개를 동시에 위반했기 때문이다.

만약 앞에 있는 차량이 A씨의 차량 때문에 위협을 느꼈다고 판단, 경찰에 신고할 경우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번 조치로 나날이 증가하는 난폭운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지나치게 운전자들을 규제하는 도구가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날부터 급정거, 급차로 변경 등을 반복해 불특정 운전자에게 위협, 위해를 가하는 난폭운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했다.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교통 위반행위 9가지 중 2가지를 연달아 하거나 하나의 행위를 지속해 다른 사람에게 위협하는 경우를 처벌할 수 있다.

난폭운전에 규정된 교통위반 행위는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과속 △횡단·유턴·후진 위반 △진로변경 위반 △급제동 △앞지르기 위반 △안전거리 미확보 등이다.

하지만 난폭운전 처벌 강화가 오히려 운전자들에게 혼란을 줄 것이란 지적도 있다. 난폭운전 처벌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한문철 교통전문 변호사는 "급하게 만들어진 졸속 법안으로, 이 규정대로라면 난폭운전을 피할 수 있는 운전자는 100명 중 1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규정에 따르면 운전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경우'에 대해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명확한 신체적·물질적 피해가 없더라도 주관적으로 운전자가 느끼는 상황에 따라 난폭운전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 또한 교통법규 2개를 위반했다는 객관적 상황이 충족되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운전자의 행위가 위협을 가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한 변호사는 "명확한 기준 없이 난폭운전을 처벌하면 경찰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입건이 가능해진다"며 "전 국민을 전과자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지적했다.

안전거리 미확보나 과속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제시되지 않은 점도 문제란 의견도 있다. 현행법상 시내 주행시 안전거리를 50미터 확보해야 한다. 규정속도보다 시속 20km를 초과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난폭운전에서 과속과 안전거리에 대해 명확한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경력 10년차인 한 개인택시 사업자는 "난폭운전이 초래한 결과보다 행동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며 "오히려 운전자의 행동제약이 많아져 원활한 교통흐름을 막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경찰 당국은 이같은 부작용은 법원의 판단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난폭운전이 형사입건이어서 법원까지 가야 한다"며 "법원이 객관적인 상황과 증거를 바탕으로 위협 정도를 파악하기 때문에 개인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에도 난폭운전에 대한 규정은 엄격한 편이다. 하지만 ‘행위’ 자체보다는 행위의 ‘결과’와 ‘의도’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판단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전문가는 "외국의 경우 교통법규 위반 사례를 세세하게 적시하지 않는다. 대신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실이 명확한 경우 처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의도적으로 타인의 생명이나 재산에 침해를 주는 운전을 한 경우’, ‘음주로 인해 타인의 안전과 재산을 침해한 경우’로 난폭운전을 규정하고 있다.

일리노이주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운전해 어린이의 신체에 상해를 입힌 경우, 난폭운전으로 타인이 신체적 장애를 입은 경우 등으로 구체화했다.

한 변호사는 "난폭운전은 보복운전 처벌이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생각하고 법규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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