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무대 전락한 고시원…"도시인들의 종착역"

머니투데이 김민중 기자 2016.02.1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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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업계 "서울대·노량진 제외하면 고시원에 고시생 없다"…열악한 공간, 고독사 원인으로 작용

A고시원의 부엌. /사진=이택주 기자A고시원의 부엌. /사진=이택주 기자


"여기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거의 없어요."

설 하루 전인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A고시원. 닷새 전 일용직 근로자 박모씨(57)가 숨진 채 발견된 이 고시원에서 대학생 임모씨(25)는 기자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고시 준비생들이 있어야 할 고시원에 고시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 대부분 20만원 안팎으로 한 달을 날 수 있는 곳을 찾아온 '주거 난민'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역시 주거 난민으로서 최근 들어 몸이 쇠약해지며 일을 얻지 못했고, 건강마저 악화돼 사망했다.

실제로 A고시원의 56개 객실을 한 곳 한 곳 들여다본 결과 자신을 고시준비생이라 말하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대개 고시는커녕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원룸이나 반지하·옥탑방의 보증금 수백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들어왔거나, 몇 달만 머무르다 주거지를 옮길 사람들이었다.



◇'이혼에 사업실패' 공식…중장년층의 마지막 선택지=A고시원에는 홀로 사는 40~80대 남성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기자가 꾸준히 대화를 시도했지만 낯선 이의 접근을 반기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진한 술냄새를 풍기거나 "꺼져라"라며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는 약간의 속내를 들려줬다. 특이한 건 깊은 한 숨, 그리고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고 사업실패를 겪었다(혹은 해직됐다)'는 고백이 공식처럼 반복됐다는 점이다. 사업실패는 대개 IMF 사태,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 등과 연관이 있었다.

조모씨(59)는 "10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며 말문을 열었다. 사별 후 이런 저런 사업에 손댔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신문배달까지 하다 고시원 생활을 택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는 탓에 변변한 일거리 없이 쉬고 있다"며 "월세 25만원을 못 내고 노숙자가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A고시원에는 조씨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다수였다. 심지어 1년치 월세를 내지 않은 채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6.6㎡ 공간에 2명 사는 경우도=A고시원의 모든 객실은 한명을 위해 설계된 6.6㎡(2평) 남짓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2명이 함께 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방은 문을 열기조차 힘들었다. 자신들을 60대로 소개한 조선족 부부는 다른 방에서 문전박대당하던 기자가 안타까웠는지 불러 말을 걸기도 했다. 남편은 "내일(설날) 중국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온다"며 "귀한 손님이 오니 설날만큼은 다른 넓은 방을 빌려 오붓하게 지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풍경은 비단 A고시원만의 것이 아니다. 황규석 한국고시원협회장은 "서울대 인근이나 노량진 등을 제외하면 서울 거의 모든 지역의 고시원들은 A고시원처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주거지로 전락했는데, 궁핍한 도시인들의 종착역인 셈"이라며 "최근 취업난 탓에 고시준비생들이 크게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고시원에는 비 고시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공간'이 고독사 부추겨"=고시원 거주자들은 고독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A고시원의 박씨뿐만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6월 연극배우 김운하, 12월 20대 여성 등이 고시원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준 바 있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세가 맞물리며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인 가운데 고시원이 주 무대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고독사 발생 건수는 2011년 682명을 기록한 후 3년 만에 1000명(2014년, 1008명)을 넘어섰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고시원을 주거지로 삼을 정도로 극한 상황에 처한 게 고독사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혼이나 사업실패 등의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제대로 된 영양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고 과음하게 돼 고독사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시원의 공간적 특징이 고독사를 부추긴다는 평가도 나온다. 구본덕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는 "주거 공간으로서 고시원은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공간이 극히 좁아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데다 환기·채광이 불량하고 저급한 건축마감 재료에서 유해물질이 배출되는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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