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에서' 남긴 유언장…'무효'가 됐다

머니투데이 김상훈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2016.02.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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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12년차 상속·신탁 전문 변호사가 말해주는 '가족들의 이야기'

'암사동에서' 남긴 유언장…'무효'가 됐다


"본인은 모든 재산을 아들 원진(가명)에게 물려준다. 사후 자녀 간에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 이것을 남긴다. 2005년11월2일 암사동에서 정민중 "

민중(가명)씨는 이같은 유언장을 남기고 2008년 세상을 떠났다. 민중씨가 사망하자 강남에 있는 민중씨 소유의 집은 원진씨와 공동상속인인 우영(가명)씨의 공동 소유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됐다. 원진씨는, 유언장에 따르면 집은 자신이 단독으로 소유해야 하는 것이지 공동소유로 볼 수 없다며, 우영씨의 소유권등기는 말소돼야 한다고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민중씨의 유언장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우영씨의 손을 들어줬다. 소유권이전등기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유언장에 주소가 제대로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중씨는 유언장에 정확한 주소를 적지 않고 '암사동에서'라고만 적었다.



◇대법원 "자필 유언장에는 작성일·주소·성명·날인 모두 있어야"

대법원은 "민법이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해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판단했다(대법원 1999.9.3.선고 98다17800 판결, 2006.3.9.선고 2005다57899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 내용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적고 날인까지 했어야만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언자가 주소를 적지 않았다면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으로 효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주소가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의해 등록된 곳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민법18조에서 정한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 다른 장소와 구별이 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춰야 한다. 대법원은 유언장에 적힌 '암사동에서'라는 부분은 다른 주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춘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법은 유언의 방식과 요건에 대해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고 있다. '자필증서·공정증서·비밀증서·구수증서·녹음' 등 5가지 방식의 유언만 인정한다. 각 방식에 대한 엄격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 '자필증서'와 '공정증서'다. 자필증서는 유언자가 직접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하는 방법이다. 비용도 들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작성할 수 있다. 하지만, 유언자가 사망한 후 유언장을 발견한 사람이 유언장을 위·변조 하거나 은닉·폐기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법을 모르는 사람이 작성할 경우 엄격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 사건 같은 경우다.

◇'워드로 작성·도장 안찍고 사인만·2015년 봄·암사동에서…' 모두 무효

자필증서로 남긴 유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유언자가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 날인해야 한다(민법 제1066조). 유언자가 직접 쓰지 않고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거나, 작성일자를 정확히 적지 않으면 무효다. 예를들어 '2015년 봄' 식으로 적어서는 안된다. 모든 요건을 갖춰 적었더라도 날인, 즉 도장을 찍지 않고 사인을 하면 역시 무효가 된다.

가장 많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주소다. 주소를 아예 쓰지 않거나, 동네 이름만 적으면 모두 무효다. 자필증서에서 주소를 적도록 하는 취지는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주소'는 유언자의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이면 된다.헌법재판소 2011. 9. 29. 선고 2010헌바250, 456(병합) 전원재판부 참조

이번 사건의 경우 원진씨가 실제 살던 곳은 민중씨가 살던 암사동이었다. 민중씨의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있는 유언장은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을 확인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유언장은 민법 제1066조 제1항에서 정한 요건에 부합하게 작성된 것으로 유효하다고 봐도 법리적으로 부당하지 않고 일반인의 법감정에도 부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처럼 법원은 자필증서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유언장을 작성할 때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등 형식을 정확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미래의 분쟁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암사동에서' 남긴 유언장…'무효'가 됐다
법무법인 바른의 김상훈 변호사는 43회 사법시험(연수원 33기)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고려대에서 친족상속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상속법과 신탁법에 관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주로 가사·상속·신탁·가업승계 등을 전문분야로 가족간 가족기업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이슈들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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