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까지 잘 사는 부모 vs 40세까지 잘 사는 부모

머니투데이 박재원 아름다운배움 부설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 2016.0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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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성장기, 부모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100세까지 잘 사는 부모 vs 40세까지 잘 사는 부모


나름 부모교육에 사명감을 가지고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무슨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라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도움을 청한 부모들의 사연들입니다.

"학교 다녀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게임만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욕실에서 물 틀어놓고 소리 내어 운 적도 많습니다. 머리 좋고 우수한 아이를 그 동안 과도하게 공부 부담을 주고 다그쳐서 다 망쳐놓은 것은 아닌가 자책도 많이 되고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큽니다."



"작년까지 강남서 제일 어렵다는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6세 때 이미 수학 3학년 공부를 시켰던 바보 같은 엄마입니다. 지금은 다 내려놓고 이사 온 지 몇 개월 됐고요. 모든 게 헝클어져 아이보다 더 아이같은 이 엄마는 상처받은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초등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공부만 했다고 자긴 너무 바보같이 살았다고 합니다. 갈수록 사이가 나빠져 아이는 게임으로 점점 더 빠지고 지금은 방 얻어서 혼자 살고 싶다고 합니다. 엄마 꼴도 보기 싫다고 해서 저도 변해보고자 아이 앞에서 울어도 보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눈물 속에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사교육을 주무기로 한 무한 입시경쟁에 매몰된 부모들. 다들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지만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왜 이런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걸까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진단과 처방을 내놓지만 미봉책 이상은 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와 아이 사이의 갈등, 그 바탕에는 '시대의 불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고 성장기와 저 성장기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사회로 이동한 속도도 가장 빠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부모들의 뼈와 피 속에 스며듭니다. 대학은 나와야 '쌍놈' 신세를 면한다는 생각, 출세를 하려면 입시에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부모들을 결국 공부와 성적에 사무치도록 만든 우리 역사를 먼저 똑바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 성장기, 그러니까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특히 일자리의 차별이 너무도 심한 우리 현실에서 부모들은 운명처럼 아이가 좋은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진학과 입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빚을 내 사교육을 시켜서라도 입시 경쟁에서 지면 희망이 없다는 강박관념에 부모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든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역사가 필요하지만 지난 역사로 인해 극심한 혼란이 생깁니다. 일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입시에서의 성공이, 명문대 합격이 더 이상 보장해주는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이 전개됩니다. 근본적인 상황 변화에 맞게 새로운 부모역할을 모색해야 하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고 성장기의 성공경험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에, 머리로는 진학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입시에 대한 집착 아닐까요? 뼈와 피 속을 흐르는 공부와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 고 성장기에 차곡차곡 쌓인 부모들의 성공경험과 저 성장기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진로, 그 사이의 불화가 화근 아닐까요?

부모의 진심과 학부모문화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문화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학부모문화의 주제는 '사교육 지향성', '엄마 주도성', '성적 지향성', '수월 지향성'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사교육 지향성'은 '학교교육보다는 사교육이 더 낫다', '엄마 주도성'은 '아이들은 모른다', '성적 지향성'은 '성적에 따라서 교육활동의 지원방식이 달라진다', '정보 의존성'은 '정보의 질이 성적을 좌우한다'는 원리를 내포한다."

학부모문화의 주제를 연결하면 현재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엄마들(엄마 주도성)은 사교육(사교육 지향성)에 대한 정보(정보 의존성)를 열심히 수집하여 아이들의 성적(성적 지향성)을 관리하고 있다.'

고 성장기의 성공경험과 사교육 효과에 대한 맹신이 만들어낸 문화라고 판단합니다. 특히 스스로 자신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립심이 절실한 상황에서 부모 주도성이라는 학부모문화는 또 다른 불화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구시대의 산물인 학부모문화를 보편적인 부모의 진심이라고 믿는 심각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불화는 계속 될 수밖에 없겠지요.

부모와 아이의 삶

농경사회, 대가족제도에서 절대적이었던 부모의 권위는 이제 해체되어야 마땅합니다. 오히려 사회변동과 관련하여 아이들에게 더 배울 것이 많은 게 부모 아닌가요? 부모의 삶을 나름대로 분류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①100세까지 잘 사는 부모 : 아이의 자립심 기르기를 부모역할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실천한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순간들이 행복으로 추억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결국 경제적으로 일찍 자립한 아이는 함께 한 추억이 가득한 부모들의 노후도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죽을 때까지 잘 사는 부모들이다.

②80세까지 잘 사는 부모 : 아이의 자립심 기르기를 부모역할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행복을 누리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 결국 거동이 불편한 늙은 부모가 자신들의 행복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아이는 부모를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건강이 유지되는 80세까지만 잘 사는 부모들이다.

③60세까지 잘 사는 부모 :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부모가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으면 아이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다. 아무리 부모의 경제력이 뛰어나더라도 자립심을 기르지 못한 아이는 부모의 지원이 끊기면 곤경에 처한다. 대략 60세를 전후로 믿었던 부모의 경제력도 서서히 바닥이 나고 부모와 아이 모두 어려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④40세까지 잘 사는 부모 : 아이의 학벌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는 부모들이다. 명문대 합격과 안정적인 직장 만들어주기를 부모 역할의 목표로 삼는다. 부모 역할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결혼비용은 물론 생활비의 일부까지 의존한다. 명문대생 자녀를 둔 부모로서 한때 우쭐했지만 이미 과도한 사교육비로 인해 가정경제는 어려움에 처하고 끊임없이 손을 벌리는 아이들 때문에 40세 이후의 삶을 힘겹게 살아야 한다.

적성보다 중요한 자립심, 그리고 파트너십

신임 고대 염재호 총장의 말입니다.

"더 이상 유람선(안정적인 직장)은 오지 않는다. 지금 당장 뗏목을 만들어 항해를 시작하라. '개척하는 지성'이 되어야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

고 성장기의 성공경험을 뼈와 피 속에서 뽑아내면 공부 못하는 불안한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스며든 학부모문화로부터 분리되면 자기 주도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훌륭한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이미 진학 중심의 진로의식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신 아이의 적성을 어떻게 찾아주어야 하느냐는 부모의 간절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먼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가요?' 부모 주도의 아이 적성 찾아주기도 진학 일변도의 부모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에 대한 관리를 포기하고 대등한 인격적 독립체로서 존중하면서 진로 개척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파트너로서 부모역할을 수정하는 것, 극심한 사회변동기에 매우 절실한 것은 바로, 지금까지 자녀를 이끌어왔던 그 손을 과감하게 놓는 용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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