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연습생, 일류호텔 셰프 되다… 중계동의 '사람책'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15.11.2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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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산호 워커힐호텔 '금룡' 헤드셰프, 아이돌 꿈꾸던 10대에서 '쿡방'계의 스타로

/사진제공=푸드TV/사진제공=푸드TV


서울 연희동 이연복 셰프의 목란, 서교동 왕육성 셰프의 진진. 중화요리의 대가로 꼽힐 스타셰프들이 선보인 레스토랑은 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노원구 중계동엔 이들 선배 셰프들과는 또 다른 '소셜(social)' 행보로 주목받는 요리계의 '휴먼북(human book)'이 있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 '금룡'의 이산호 헤드셰프(35) 얘기다.

이 쉐프는 올리브TV '올리브쇼 2015'와 '아바타 셰프', 푸드TV '이산호의 가가호호반점' 등 '먹방계'에서는 이미 대세로 통한다. 올해 중국상해 세계요리왕대회 단체전에서 특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잘 나가는 셰프가 휴먼북을 자처한 이유는 10대 때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일류호텔의 헤드셰프이지만 소년시절엔 가수가 꿈이었다. 오디션을 통과해 '해소년'이란 그룹으로 그룹 '신화'와 함께 데뷔할 뻔하기도 했다.

"3년을 집에다 공부한다고 속이고 아이돌로 데뷔할 준비를 준비했는데 고3 때 결국 탄로가 나 집에서 쫓겨났어요. 당시엔 대학교도 못 가고 가수도 못 돼 방황 많이 했습니다."



아이돌 연습생, 일류호텔 셰프 되다… 중계동의 '사람책'
IMF 금융위기로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아파 누워계신 어머니께 정성껏 라면을 끓여드렸다. "눈물을 흘리시며 맛있다고 하셨어요. 그때 생각했죠. 음악으로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음식도 가능하겠구나…."

요리사의 길도 험난했다. 공사장 식당에서 8개월간은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설거지만 했다. 당시 아미가 호텔(현재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에선 기를 쓰고 주경야독해 장학금을 받고 대학까지 마쳤다.

"군 제대 후엔 취업을 위해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실습과 연수 프로그램을 거쳤어요. 3년간 남들보다 2시간 먼저 출근하고 2시간 늦게 퇴근했어요. 같이 입사한 동기 80명 중 지금은 5명만 남았죠."


3개 방송에 동시 출연하면서 호텔셰프로서의 본업에 충실하려니 요즘은 몸이 2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도 노원구 휴먼라이브러리에서의 휴먼북 활동은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재능기부자들이 일종의 사람책으로서 '대출'되는(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 셰프를 포함해 600여명의 휴먼북이 '대출'을 기다리고 있다.

이산호 워커힐호텔 '금룡' 헤드쉐프 <br>
이산호 워커힐호텔 '금룡' 헤드쉐프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제 경험을 필요로 하는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죠. 인터넷에서 재능기부에 참여할 휴먼북을 찾는다길래 지원했어요. 요리사가 되고 싶은 청년들에겐 10대 때의 방황을 포함해 제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쿡방' 열기로 셰프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다. 하지만 화려해보이는 방송 모습과 달리 현실은 요리업계 역시 냉정한 직업의 세계다. 이 셰프는 요리사의 자질로 인내와 성실성, 넘어야 할 벽으로는 자신과의 싸움을 꼽았다.

"요리 역시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찾아 연습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궁합을 찾아내 나만의 기술, 나만의 음식에 대한 깊이와 철학이 있어야 해요."

지금이야 스타셰프의 전성시대지만 이산호 셰프는 방송을 타기 전 일찌감치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관련 레시피를 공개하며 '중식전도사'로 활동했다. 양식이나 한식에 비해 인터넷에 중식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게 안타까웠다.

이 셰프는 "좋은 음식을 알리는 건 요리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의 낙"이라며 "앞으로는 (조리가) 오래 걸려 잊히고 사라지는 맛들을 찾아 보존하는 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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