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속았다는 곽 중사, 속인 적 없다는 국방부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15.11.0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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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국방부 '눈가리고 아웅'식 일회성 입장발표, 민간병원 진료비 논란 가중시켜

곽 중사 어머니 정모씨가 지난달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보내온 편지. /사진=정의당 제공곽 중사 어머니 정모씨가 지난달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보내온 편지. /사진=정의당 제공


"지난 9월엔 뉴스에서 분명 국방부가 지뢰 부상자들 치료비 전액 부담한다고 한 거 아닙니까."(4일 곽 중사 어머니 정모씨)
"전액 지원 가능하다고 받아들였다면 전달이 잘못된 것이며 곽 중사 치료비에 대한 국방부 입장은 변함 없다."(5일 국방부)

지난해 6월 비무장지대(DMZ) 작전 중 지뢰폭발 사고로 부상 당한 곽모(30) 중사의 민간병원 치료비 지급문제를 놓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방부가 말을 바꿨다고 하는 곽 중사 측과 이것이 오해라는 국방부, 누구 말이 맞고 누가 틀린 것일까.



이번 논란은 양측의 주장이 각자의 입장에서 모두 맞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자 원인이다. 그리고 문제를 이처럼 복잡하게 만든 책임은 민간병원 진료비 논란이 생길 때마다 일시적 수습을 위해 실제 정부의 능력 이상으로 해결을 공언해온 국방부, 정부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곽 중사의 어머니가 지난 4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수차례 언급한 시점은 지난 9월6일 박근혜 대통령이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부상당한 하재헌·김정원 하사를 직접 찾아간 장면이다.



박 대통령이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키다 이렇게 다쳤는데 병원 진료비 얘기가 나온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땅히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당연하다"고 말하며 금일봉을 전달하는 모습은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을 장식했다.

이는 지난 9월5일, 두 다리를 잃은 하 하사가 자비 치료중이라는 언론보도가 나간 즉시 이뤄진 일이었다. 국방부는 5일 입장자료를 통해 "하 하사가 민간의료기관에서 진료 중 추가된 진료비에 대해 일체 자비부담이 없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것은 '자비 부담이 없도록 조치하는 근거'를 설명한 다음 대목이다. 국방부는 "현역 군인이 민간의료기관에서 치료시 동일 질환에 대한 치료비의 최대 지급기간은 30일이지만 하 하사는 다리 부상 외에 복합적인 치료가 필요하므로 30일을 초과하는 기간의 치료비에 대해서도 전액 국방부가 부담할 예정"이라고 했다.


즉 국방부는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하 하사의 진료비를 '전액 부담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근거로 하 하사의 부상이 여러 부위라는 '예외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같은 구체적인 맥락을 생략한 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고 공언했다. 하 하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어도 국방부가 알아서 '여러 부위'를 감안해 진료비를 전액 부담해줬을까. 정부는 하 하사 진료비를 전액 지급하면서 이것이 전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예외적 근거를 찾은 게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6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지난 8월 4일 DMZ지뢰폭발로 인해 부상을 당한 육군 하재헌 하사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뉴스1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6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지난 8월 4일 DMZ지뢰폭발로 인해 부상을 당한 육군 하재헌 하사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뉴스1
곽 중사의 어머니가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 민간병원 진료비 750만원을 자비로 부담한 사실을 호소한 건 하 하사와 자신의 아들의 처우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편지가 보도돼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또 다시 즉각 진화에 나섰다. 국방부는 9월23일 입장자료를 통해 "국방부는 곽 중사의 공무상요양비 신청이 있을 경우 즉시 심의를 거쳐 지급여부 및 지급액수를 결정할 것이며, 올해 2월 이후 발생한 비복신경(장딴지 신경) 손상에 의한 저림 증상 치료 등에 대해서는 군 병원 진료 가능여부 및 추가적인 민간병원 요양기간 인정 여부를 검토하여 진료비가 발생하지 않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하겠다"고 했다.

이후 국방부는 지난달 20일 "하사 이상 군 간부가 전투나 고도의 위험직무 수행에 따른 질환으로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 군인연금법상 공무상 요양비 지급기간을 현행 최대 30일에서 최초 2년 이하, 필요할 경우 1년 이하 기간단위로 연장하도록 군인연금법 시행령이 개정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물론 '소급적용 불가'라는 내용은 보도자료 내 들어있지 않았다. 국방부로서는 당연한 사실인지 몰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소급적용'까지 생각하지 않고 "늦었지만 다행이다"라고 반응했다. 대통령의 공언과 군인연금법 시행령 개정 보도에 기대를 품고 기다린 곽 중사 측은 지난 3일 육군으로부터 여전히 30일치 이상의 민간병원 진료비를 받을 수 없음을 통보받고 크게 실망했다. 이 사실은 4일 정의당의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졌다.

국방부는 같은 날 저녁 입장자료를 통해 "언론에서 보도한 '곽 중사의 민간진료비 지급거부'는 사실이 아니다. 어제 육군본부에서 곽 중사의 어머니와 통화에서 '공무상 요양비 신청을 하시면 공무상 요양비를 지급하겠다', '개정된 군인연금법시행령 소급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거의 '말장난'에 가깝다. '진료비 전액 지원'을 기대하고 1년 반 가까이 기다린 곽 중사 측에게 당연한 권리인 '30일치 지급이 가능하니 지급 거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언론에 '곽 중사 측이 공무상 요양비 지급 신청을 하지 않고 있다'며 책임을 전가시키는 언론플레이를 했다.

국방부의 '눈가리고 아웅식' 입장발표는 이번엔 통하지 않았고 역풍을 맞았다. 언론이 앞다투어 곽 중사 측을 인터뷰하면서 전말이 드러났다. 국방부는 이틀만에 '곽 중사의 진료비' 관련, 전례없이 긴 분량의 입장발표를 다시 냈다. 그러나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국방부는 이번에도 '해줄 수 없는 것'보다 '해준 것', '해줄 수 있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맞춤형 복지 단체보험' 보험금과 (30일치) 공무상 요양비가 지급되면 개인 부담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750만원은 그리 큰 돈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군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워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5차례에 걸쳐 접합수술과 피부이식 수술, 철심 제거수술을 받았으며 향후 후유증으로 장기적 치료와 추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곽 중사로서는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국가의 약속이 절실하다. 또한 곽 중사의 어머니처럼 사적으로 1년 넘게 투쟁을 하고 언론에 노출돼야만 이러한 보상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방부에서 보상관련 법률의 소급적용을 꺼리는 이유는 충분하다. 법적으로 소급 대상을 제한하지 않으면 정부의 재정부담이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다. 연평해전을 계기로 2004년 군인연금법을 개정해 '전사자' 규정을 마련하고도 연평해전 여섯 용사들에게 소급적용하지 못한 건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국회에서는 이들을 전사자로 격상하는 특별법안조차 유사사례 발생시 예산부담 우려에 통과되지 못했다. 최근 논란 이후 민간병원 진료비 지급기간을 늘리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소급적용 인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다시, 속았다는 곽 중사와 속인 적 없다는 국방부, 누구 말이 맞을까. 국방부는 곽 중사 측에 명시적으로 '전액 지급'을 밝힌 적은 없지만 자신의 한계(소급 적용 불가)를 제대로 밝힌 적도 없다. 분명 법은 국회 몫이고, 법을 떠나 국방부가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일시적인 논란의 해소를 위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헛된 기대감을 품게 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타깝지만 정부는 현재 군인 보상과 관련된 우리의 법이 국민의 '상식'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정직하게 알리고 불합리한 법을 선진화하려는 노력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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