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글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회 휘호경진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한글을 쓰고 있다. 오는 9일은 한글의 569번째 돌인 한글날로 올해는 광복 70년을 맞아 더욱 의미가 깊다. /사진제공=뉴스1
#2. 공대생 강모씨(26)는 얼마 전 친구가 메신저로 보내온 '장미단추'라는 단어를 듣고 질겁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장거리 미녀, 단거리 추녀'를 줄인 말이라고 설명했다.
◇ '맛저'·'핵노잼'…이대로 괜찮을까?
9일은 한글의 569째 돌인 한글날이다. 2015년, 신어의 사용은 일상이 됐다. 우리의 삶을 파고든 새로운 말들은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맛저' 대신 "맛있게 저녁식사 하세요"라고 길게 말하는 사람은 '핵노잼'(매우 재미없음)이 되어버리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7일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국립국어원이 지난 10년(2005~2014년)간 발표한 신어는 총 3663개였다. 매년 300~600개에 달하는 신어가 발표된 셈이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신어는 335자로 '낮져밤이'(낮에는 약하지만 밤에 강한 남성이나 여성),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현웃'(현실에서 웃다) 등이 포함됐다. 국립국어원은 비속어나 사회통념상 부적절한 어휘는 발표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실제 대중 사이에서 쓰이는 신어는 훨씬 더 많은 상황이다.
지난해를 비롯해 최근의 신어들은 대부분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보다는 기존의 말들을 합성·혼성·축약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특징을 보였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14년 신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신어 중 완전히 새로운 용어인 '단일어'는 전체의 8.13%에 불과했다.
나머지 91.87%의 신어는 '그린라이트(그린+라이트)'처럼 어근과 어근이 합쳐진 합성어거나 '산삼돌(산삼+아이돌)'처럼 단어와 단어(혹은 일부)가 합쳐진 혼성어, 그리고 '얼집(어린이집)'처럼 긴 단어를 줄인 축약어였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2016학년도 어른이평가시험 문제지 - 신조어 영역'. 올해 새롭게 탄생한 신조어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시험해 볼 수 있다.
'심쿵'(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라움), '약스압'('약간 스크롤 압박'을 줄여 이르는 말), '위꼴샷'(위가 움직일 정도로 식욕을 자극하는 사진)…. 세종대왕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단어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현재, 신어 범람 현상이 한글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과연 신어는 우려처럼 한글 파괴를 불러올까. 전문가들은 신어 현상 자체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변하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며, 우리말이 신어 현상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은 "사회가 변하면서 신어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라며 "그 시기에 쓰인 단어들은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자료의 기능도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신어들을 우리말로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어문 문제를 국가가 주도해 왔지만, 점점 일반 국민에게 맡기고 있다"며 "한글 규범도 어느 정도 정착했고 국민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필명 이인화)는 "언어생활은 특정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예전에 프랑스에서도 언어를 지키겠다고 외래어를 규제하고 벌금을 매기는 등 인위적인 정책을 펼쳐봤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셰익스피어 전과 후의 영어가 완전히 다르듯, 문인이 언어생활의 혁신자가 되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람들이 독서를 더 많이 해서 책 속의 신어를 받아들인다면 한글은 온라인 용어 위주로 변화하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