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식탁 위, 나무젓가락 세 개 세우는 시인의 마음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15.09.1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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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김명철 시인 ‘바람의 기원’

편집자주 '시인의 집'은 시인이 동료 시인의 시와 시집을 소개하는 코너다. 시인의 집에 머무는 시인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가깝게 두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시와 시집을 소개한다. 여행갈 때,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시 한편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일, 시 한수를 외우고 읊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갖는 것 또한 시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의 집]식탁 위, 나무젓가락 세 개 세우는 시인의 마음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김명철(53세) 시인은 2010년 발간한 첫 시집 ‘짧게, 카운터펀치’의 약력에 수록했던 서울대학교 독문학과와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졸업이라는 근사한 학력을 두 번째 시집 ‘바람의 기원’에서 뺐다. 왜 그랬을까? “화성의 한적한 마을로 이사를 하면서 비정규직 강의도 그만두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대학에서 비정규직 강의를 하다가 “아침에 떨어진 꽃잎 수준”(‘말, 말, 말, 그리고 고지’)으로 ‘전투력’이 떨어졌고, 그것이 “돈도 사랑도 안 되는 노동”(‘해독(解毒)’)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명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바람의 기원’은 대학이라는 링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던 지식노동자가 모든 걸 포기하고 가족 곁으로 돌아가 함께 살아가면서 아파하는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링 위에서는 나 혼자 아파했고, 나를 바라보는 가족은 링 밖에서 아파했지만 가족 곁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 아파하고 있다. 시인은 “내가 나에게 괜찮은가 하고 묻고 괜찮다고 대답”하지만 실상은 괜찮지가 않다. 많이 아파하고 있다.

(중략) 부러진 햇살에 찔려/ 밤마다 힘이 빠져나가는 아들의 다리를 만져보다가/ 내 두 다리와 아들의 오른 다리를 바라본다/ 아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식탁 위에 나무젓가락 세 개를 세워/ 안정감을 확인한다// 아들의 면발 위에 열무김치를 올려주다 말고/ 얼굴을 돌려 유리창에 번진 햇살에/ 두 눈을 말린다
-‘괜찮다’ 일부




몸이 불편한 아들과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칼국숫집을 찾았는데, 하필 아이들 운동회에 다녀온 “한 무리의 여자 손님들이/ 옆 식탁에 자리를 잡자마자” 자식자랑에 열을 올린다. “소란한 대화 속에 배경처럼 앉아 있던 아들이 귓속말”로 “아빠, 난 괜찮아” 하며 오히려 아빠를 위로한다. 아빠는 말없이 아픈 아들이 “먹으면 안 좋다는 바지락을 골라”낸다. 아들의 가느다란 왼쪽 다리는 아빠의 무릎에 올려져 있고, 아픈 아들의 다리를 보며 “식탁 위에 나무젓가락 세 개를 세워/ 안정감을 확인”하는 아빠의 눈에는, 마음에는 피눈물이 흐른다. 곁에서 보는 듯, 눈에 선한 이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중략)하루가 너무 길다/ 남는 게 없는 생활도 하고/ 남는 게 없는 생활 아닌 것도 한다/ 보도블록만 보고 걷다가/ 이파리만 보고 걷기도 한다/ 해가 짧아지고 흐린 날이 많다/ 어두운 계절이 온다// 다시 한 번 바쁜 척하며 살기로 한다/ 끊임없이 움직이기 위해/ 빗속에서도 뛰지 않고/ 햇빛 속에서도 모자를 쓰지 않기로 한다/ 생각에도 쥐가 나기를(중략)
-‘하루하루, 하루’ 일부


도시의 지식노동자로 살면서 몸과 마음에 독이 쌓였지만, 어쩌면 당시 삶 자체가 독이었겠지만 “나만 보고 있다가 불현듯”(‘생각’)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시인의 삶은 막막하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다. 그저 긴 하루를 보도블록과 이파리만 보고 걷는다. 시인에게는 “어두운 계절”이다. “어디에 바늘을 꼽아야”(‘마비’) 몸과 마음의 독을 치유할 수 있는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기를 “바쁜 척하며 살기로” 한다. 여전히 비포장 눈길을 걷고 있는 시인은 가족과 함께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시인은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인들에게 시를 가르치며 함께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 바람의 기원=김명철/실천문학사/160쪽/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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