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의 쿠팡 3600만弗 수수료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5.09.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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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Korea on&off the record](5) 투자은행과 기업금융

편집자주 우리 자본시장과 그 너머의 이슈를 찾습니다. 드러난 문제의 의미와 가려진 배경을 적습니다.

배트맨에게 알프레드라는 집사가 있다. 주인이 악을 소탕하는 동안 수트와 무기, 각종 기동머신을 준비하고 그의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이다.

투자은행(IB)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업이 본업을 잘하도록 돕는 금융 집사라고 할만하다. 기업의 재무주치의로 그 필요를 충족해 자신들도 이익을 얻는 자다.



한국에 진출한 골드만삭스가 지난 6월 이커머스 기업 쿠팡에 투자를 유치해주고 얻은 수수료는 이런 IB의 역할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골드만삭스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중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약 3600만 달러(426억원)의 수수료를 받아냈다.

단일 거래에 단일 IB가 수수한 426억원이라는 자문료는 최근 10년간 국내에서는 새로운 최고기록으로 평가된다. 2011년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매각될 때에 메릴린치와 산업은행,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은 약 500억원의 수수료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메릴린치가 300억원, 나머지 200억원을 두 증권사가 반씩 나눠가져 개별 수수료는 40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삼성생명보험, 제일모직 IPO 등에서도 개별 IB들의 수수료는 많아야 100억원 안팎에 불과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계 IB들도 요즘엔 랜드마크 딜을 거머쥐기 위해 10억원 내외의 수수료에도 경쟁을 펼친다. 우선 딜에 발을 담그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인센티브나 트렉레코드, 금융주선료 등을 좀 더 챙기려는 복안이다. 옛날 같으면 300만 달러 이하 수수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최근엔 다르다. 금융위기 이후 IB들의 위상이 떨어지고 생존 문제가 불거졌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자체 금융역량은 성장했고 IB 출신의 전문가들이 인하우스로 대거 유입된 결과다. IB는 이제 레드오션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골드만삭스라는 집단은 남다른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콧대 높은 이 유대계 글로벌 IB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장 경쟁자였던 베어스턴스, 리먼 브라더스 등이 사라지고 유럽계인 UBS, RBS 등이 힘을 잃자 더욱 승승장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들은 삼성전자(삼성SDS 상장)와 현대기아차(이노션 지분 매각) 등 대표기업의 모든 대형거래에 참여해 큰 수익을 챙겼다. 여기에 더 나아가 성장기업의 중견화 등에 관여하며 보이지 않은 실익을 거두고 있다.

ⓒ 유정수 디자이너ⓒ 유정수 디자이너


골드만삭스가 다른 IB들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첫째 리드 뱅크로서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힘을 키우면서 많은 IB들은 기업 재무담당자 앞에서 을(乙)의 태도로 일관한다. 덤핑 수수료를 받아들이고 낮은 자세로 서비스를 수행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기업과의 관계를 갑을로 따지기보다는 대등한 파트너십이라 주장한다.


실례로 이들은 최근 국내 2대 그룹인 현대기아차와 냉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노션 지분 매각과정에서 정의선 부회장의 이익과 자신들의 로열 클라이언트인 KKR의 이해를 맞추려다가 현대기아차 고위 임원진의 오해를 산 것이다. 웬만한 IB라면 이 상황에서 한국대표가 기업에 먼저 찾아가 관계를 복원하려 했겠지만 담당 뱅커인 최동석 한국대표는 결코 저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대기업들의 강한 정책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이유는 둘째 다양한 수수료 수입원을 개발해내는 역량이 있어서다. 그런 비근한 사례가 쿠팡 거래다. 티어 1급 IB라서 대기업의 대형 M&A, IPO에만 관심이 있을 것 같지만 이들은 다양한 수익원을 갖고 있다. 골드만삭스PIA라는 직접투자 관계조직을 통해 될성부른 초기기업의 대형화를 도우면서 미래 수익원을 찾아내는데 기막힌 재주를 갖고 있다.

쿠팡이라는 소셜커머스에는 4년 전 창업초기부터 골드만삭스가 관계했다. 정형진 골드만삭스 한국공동대표가 쿠팡이 초기기업으로 재무관리 능력이 부족한 것을 파악하고는 자신의 친구인 송경찬 현 CFO를 추천해 다리를 만들었다. 쿠팡이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나타내자 골드만삭스는 나스닥 IPO를 계획했다. 페이스북의 160억 달러짜리 IPO를 성사시킨 이들은 미국 시장에서 쿠팡이 한국의 차세대 이커머스 리더로 충분히 먹힐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이 계획은 업계 내 경쟁자인 티켓몬스터의 M&A로 한때 수포가 되기도 했다. 티켓몬스터가 국내 소셜커머스 시장의 이니셔티브를 내세워 미국 리빙소셜, 그루폰 등과 지분매매를 펼치면서 후발주자로서 그와 비슷한 처지에서 투자가들에 독창성을 내세우기 힘들었던 탓이다. 하지만 쿠팡은 하버드대 출신의 유능한 리더를 갖고 있었고 같은 학교 선배인 정형진 골드만삭스 대표는 충분한 차선책을 예비했다. 물류체계를 혁신하는 선제투자로 아마존과 같은 유통업 본연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외부자금 수혈의 명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게 쿠팡의 총알배송 전략이다.

골드만삭스가 소프트뱅크의 자금 10억 달러(1조2000억원)를 유치해주고 받은 수수료는 이런 배경에서 4년간의 예비 작업으로 얻어낸 성과다. 대형 IB딜의 평균적인 수수료를 약 30억원으로 본다면 쿠팡 하나로 15건의 딜을 단번에 해치운 결과와 같다. 대기업들에게 불려가 굽실거리지 않아도 금융솔루션을 기업과 같이 개발하면 진정한 재무적 파트너로서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는 증거다.

이들은 가끔 지나치게 얄밉지만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스마트폰 배달 애플리케이션 시장의 성장을 예견하고 '배달의 민족-우아한 형제들'에 400억원의 자금을 선제 투자했다. 몇 년 후 골드만삭스가 배달의 민족 투자금을 수천억원으로 회수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에 우리 금융사들이 가슴만 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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