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비용 '0원', 모은 돈 부모님께 선물"…답은 '脫한국'?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2015.09.02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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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전쟁③]임차인 권리 강화방안, 국회서 표류…"주택정책, 산업보다 '주거복지' 시각 필요"

편집자주 우리 경제가 고도 성장을 멈추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20~30대 청년층의 경제적 독립은 갈수록 어려워져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간신히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고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주거불안이 또 다시 이들을 가로막는다. 노후준비를 미루고 자녀 교육에 아낌 없이 투자했던 부모들은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결혼할 자녀의 '집 걱정'에 매달려야 한다. 사상 최악의 주거난에 결혼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자녀와 노후를 포기해야 하는 부모 간 '천륜싸움'으로 변질되는 슬픈 현실을 들여다봤다.

A씨(여·33) 부부가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 사진=독자 제공A씨(여·33) 부부가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 사진=독자 제공


"결혼비용 '0원', 모은 돈 부모님께 선물"…답은 '脫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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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A씨(33·여)는 독일인 남성과 2년여 열애 끝에 지난해 7월 결혼했다. 결혼을 앞두고 혼수 자금을 셈하는 시기, 남편한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결혼하는 데 왜 큰 돈이 필요하나"는 것.

결혼식은 시청에서, 피로연은 인근 학교에서 치렀다.하객은 가족과 가까운 지인 20여명이 전부. 혼수나 예단 자체가 없었다. 신접살림은 스튜트가르트의 한 월세 주택에서 시작했다. 보증금은 임대료의 2배 수준에 불과했다. 의문은 믿음이 돼 갔다. 결혼에 큰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널뛰기식 임대료 상승이 없어 안심이 됐다. 독일에선 통상 계약기간이 없는 게 원칙이다. 집주인이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땐 늦어도 5개월 전에 하고, 이마저도 상한선이 있다. 2년마다 25% 수준으로 임대료가 오르는 한국의 전세대란과는 거리가 멀다. A씨는 독일로 떠나며, 교직생활을 하며 모았던 결혼자금 6000만원을 부모님께 선물로 드렸다. "하나밖에 없는 딸, 멀리 가게 돼서 죄송스런 마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신혼집을 둘러싼 부모·자식 간 '결혼전쟁'의 해소를 위해 핵심 원인인 주거대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주거대란의 부작용 해소를 위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한다.



◇임차인 보호 위한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제자리 걸음'"
'결혼전쟁 1편("대출받아 신혼집 해달라"…부모·자식 간 '결혼전쟁')·2편'("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돌아온 자녀들 '리터루족')를 통해 만난 예비·신혼 부부 11쌍과 가족들은 결혼전쟁의 주된 원인을 한 목소리로 '전세대란'이라고 꼽았다. 젊은 부부들은 천정부지 오르는 전세금을 보며 "이자만 내다가 내 집 마련은 언제하나"라며 낙담했고, 부모 세대는 "나도 형편이 되면 왜 안 해주고 싶겠나"며 안타까워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최근 2년새 4000여만원 상승했다. 유례없는 폭등에도 규제 방안은 마땅치 않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연 5% 이상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고 있지만, 재계약에만 적용될 뿐 신규 계약과는 무관하다. 임대료 상승 폭을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와 최대 4년의 임대기한을 보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 등이 대안으로 여겨지지만, 정부 반대와 여야 이견으로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독일 정부는 최근 베를린 지역의 주택 임대료를 지역 평균가의 10%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영국에선 세입자와 집주인이 임대료를 정할 때 행정부가 마련한 공정 임대료를 기준으로 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사례에 비춰볼 때 "국내서도 불가능한 제도가 아니며, 정부여당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 "'턱 없이 부족한' 임대주택, 소득약자 외면"
임대주택 활성화 차원에서 정부가 '행복주택'과 '뉴스테이' 사업 등을 진행중이지만 시장 수요와는 온도 차가 상당하다. 8년간 머물수 있는 장기 임대주택 '뉴스테이'는 비싼 임대료로 소득 수준이 낮은 젊은 부부들에겐 문턱이 높고, 철도부지 등 도심 유휴부지를 활용한 신혼부부 장기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은 입지가 좋은 곳은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는 반면 나머지는 도시 외곽에 위치해 인기가 수요가 '극과 극'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임대주택 사업은 실수요자인 청년과 신혼부부 등 소득 약자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정책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만,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급자들 사업성을 우선시 하겠다'는 건 문제"라며 "임대주택 사업이 마치 신도시 개발 형태로 진행되면서 결국 건설대기업들만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 "결혼은 '플랜'이지만…" '오락가락' 정부정책에 결혼계획도 물거품
'고무줄' 부동산 정책도 예비부부들에겐 결혼 준비의 장애물이다. 주거문제는 결혼생활의 가장 중요한 '장기 플랜'이지만, 일관성 없는 정책 탓에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부는 지난해 8월 DTI(총부채상환비율)·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완화했지만, 가계부채 속도가 빨라지자 1년여 만에 원리금 분할 상환을 독려하고 대출시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빚 내서 집사라'고 독려하다 '빨리 갚아라'로 말을 바꾼 셈이다.

조 교수는 "부동산 정책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결국 정부의 주택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원인"이라며 "주택을 산업이 아닌 주거 복지의 측면에서 보고, 주거 약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층의 주거문제가 가족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한테 물려받지 않으면 주거 문제로 삶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소득 약자가 집이란 족쇄에서 해방되지 않는다면,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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