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죄로…" 법정서 죽어가는 트랜스젠더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5.08.2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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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혐의' A씨 "에이즈로 투병, 구치소 약 제때 안줘…병세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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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법정에서 죽어가고 있다. 사랑 때문에 시작한 일에 목숨까지 걸게 될 줄은 몰랐다. 사정기관의 방치 속에 그는 구치소에서 에이즈와 홀로 싸워야 한다. 시간마저 오래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 같다.

24일 서울북부지법에 따르면 에이즈 환자인 A씨는 필로폰을 수차례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9일 열린 공판에 출석한 A씨는 재판부에 "몸에 수포가 올라오고 있다"고 호소했다. 구치소로부터 약조차 제때 받지 못했다고 탄원했다. 수포가 혀까지 번지면 음식을 씹을 수조차 없게 된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휘감고 있다.



A씨는 2007년 '사람면역부전바이러스'(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체포 직전인 지난 3월 25일 병원에서 "HIV 농도가 매우 높은 반면 약물 순응도는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년째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해 왔지만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의미다. 3월 28일 구치소에 수감된 후로는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A씨를 수용 중인 성동구치소가 약을 제대로 보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머니투데이 취재 결과, 지난 18일과 19일에는 약이 A씨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성동구치소는 "18일은 담당의가 휴진이었고, 19일은 재판일이라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고 인정하면서도 "20일부터 약을 처방해 A씨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중증 환자를 관리해야 할 교정시설의 해명치고는 지나치게 안이한 인식이 드러난 대목이다. 게다가 A씨는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뿐 최근 이틀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약을 제때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법정에 선 것은 전 연인 B씨 때문이다. 2013년 인터넷 채팅에서 만나 연인 관계가 됐다. A씨는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2012년 태국에서 성 전환 수술을 받았다'고 털어놨고, B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HIV 보균자라는 사실까지 털어놨다. B씨는 처음에는 욕설을 퍼붓고 주먹까지 휘둘렀지만 끝내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A씨에겐 유일한 기댈 곳이었다.

B씨가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이들의 사랑에 균열이 발생했다. 수감 중 B씨는 'A씨도 작년 5월 3회에 걸쳐 나와 함께 필로폰을 맞았다'고 검찰에 제보했다. 두 사람은 대질신문에 마주앉게 됐고, A씨는 "나도 1회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A씨는 자백 3개월 만에 진술을 번복했다. "함께 마약을 하자"는 B씨의 권유를 수차례 거절했다는 것. 투약을 거부하자 B씨로부터 가혹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가까스로 도망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변론요지서에서 "'네가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진술해야 내 형이 줄어든다'는 애인의 말에 거짓으로 자백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약물 검사를 마친 상태이지만 검찰은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A씨가 수감된 뒤 B씨는 실제로 형이 감경돼 출소했다. 그러나 최근 3달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A씨의 필로폰 투약 여부를 입증할 핵심 증인이지만, 수차례 공판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다음 공판에 출석할지도 미지수다. A씨의 지인은 "증인도 없이 재판만 길어지고, 구치소에서 약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A씨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 동안 A씨는 생명의 위협은 물론 스스로 선택한 '여성성(性)'조차 지켜내지 못할 처지에 내몰렸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외모는 완벽한 여성이지만 지속적으로 여성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월 1회 호르몬 주사를 맞고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구치소 내에선 불가능하다.

몸과 마음의 건강은 물론 그가 인생을 걸고 선택한 성 정체성 마저 벼랑 끝에 내몰렸다. 트랜스젠더, 에이즈 환자, 마약 전력까지. 사회의 '따뜻한 시선' 따위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삶에 대한 '끈'을 부여잡고 있다. 내달 초로 예정된 다음 공판에서 재판부의 판단, 연인 B씨의 출석 여부에 소수자의 '결정판' A씨의 일생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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