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안보내고 '자식 넷' 수재로 키운 아빠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15.07.15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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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캠페인]'루저' 없는 사회-성공의 기준을 바꾸자 ⑦김준희 전 능률교육 대표

편집자주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누구나 고통스러운 입시전쟁, 스펙경쟁, 취업경쟁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이는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이른바 '루저(loser, 패자)'로 전락합니다. 도대체 왜 대한민국에는 이토록 루저들이 넘쳐나는 걸까요. 머니투데이는 오랜 시간 해법을 고민한 끝에 우리 사회 '성공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때마침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같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에 머니투데이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뜻을 모아 '성공의 기준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강지원 변호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꾸준히 인터뷰를 통해 소중한 경험과 의견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사진=이정호 인턴기자/사진=이정호 인턴기자


신기했다. 직원들이 하나같이 'CEO 칭찬'에 입이 말랐다. 직장 상사는 좀 씹어줘야(?) 제 맛인데 웅진씽크빅 직원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 때부터 김준희라는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게 됐다.

기자로서 출입처 CEO에 특별한 관심이 생겼으니 인터뷰 요청은 수순. 하지만 당시(2008년으로 기억한다) 김준희 웅진씽크빅 대표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인터뷰에 잘 나서질 않았다. 직원들은 겸손한 성격이라 그렇다며 두둔했다. 그러면서 인격이 훌륭해 자녀들(4명)도 하나같이 수재라는 귀띔을 곁들였다. 기자의 호기심은 더 커졌다.



이후 바빠서 잊고 지내다 김 대표가 능률교육 CEO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능률교육 창업자인 이찬승 대표는 고지식한 선비 스타일로, 뜻한 바 있어 회사를 팔고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이란 시민단체를 만들어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가 분신처럼 아낀 회사의 후임자로 김준희 대표를 꼽았다고 하니 김 대표에 대한 사그라진 호기심이 다시 발동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능률교육에서도 인터뷰에 나서질 않았다. 이뤄놓은 게 없어서 적절치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웅진씽크빅의 일부 직원들이 김 대표의 이직이 아쉬웠는지 틈틈이 그를 찾아 직장생활 상담을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타사까지 찾아가 직장생활 상담을 한다니 특이한 일이다. 김 대표는 한 술 더 떠 직장 멘토로서 후배들을 일일이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서른과 마흔 사이, 어떻게 일할 것인가'란 상담서를 펴냈다. 읽어보니 기자에게도 위안과 감동이 밀려왔다. 10권을 구해 사표를 품고 다니는 후배들에게 한 권씩 쥐어줬다. 김 대표가 호기심의 대상에서, 존경의 대상으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3년여가 지나 갑작스레 능률교육 CEO에서 물러나고, 야인이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때다 싶어 ‘성공의 기준을 바꿉시다’ 인터뷰를 청했다. 이력만 보면 ‘사교육’ 대표선수였지만, 촉으로는 캠페인 적임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중 그는 사교육과는 거리가 먼, 자녀교육에 있어 정말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비법’을 공개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이상하게 실천하기 쉽지 않은, 그 오묘한 비법을 한 번 들어보자.

/사진=이정호 인턴기자/사진=이정호 인턴기자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가 즐겁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아이는 늘 즐겁고 싶다. 하지만 부모 생각은 다르다. 학원을 보냈으니 ‘돈값’을 증명받고 싶어한다. 아이의 즐거움을 빼앗는 건 결국 부모의 욕심이다. 부모로서 꼭 콘트롤해야 할 마음이 ‘욕심과 두려움’ 두 가지다. 욕심과 두려움은 자녀교육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실패를 부르는 근원이다. 주식투자에서 망하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욕심과 두려움 때문 아닌가?


-부모가 욕심과 두려움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데.
▶자녀교육에서 욕심은 보통 선행학습으로 연결된다. 두려움은 내 아이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에서 나온다. 사실 별 욕심 없는 부모들도 주변에서 가만 놔두질 않는다. 선행학습을 안 시키면 자녀에게 무책임한 것이고, 교육을 포기한 것이라고 계속 비난하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성적표는 원래 아이가 얼마나 공부했는가 결과를 보기 위한 측정 도구인데, 본말이 전도되면 점수를 위해 공부를 하게 된다. 점수를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게 정말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데 부모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무얼 빼앗기는 걸까.
▶사실 학교에서 배운 걸 일상에서 얼마나 써먹을 수 있겠나. 그럼에도 공부를 시키는 건 배우는 과정에서 중요한 걸 깨닫게 만들기 위해서다. 미지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게 만드는 것, 그게 공부의 목적이다. 그런데 본말이 전도되니까 과정은 온데간데 없고 점수 높이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아이가 깨우치는 과정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점수는 잘 나오지만 아이는 바보가 돼 간다. 점수 잘 나오는 요령만 가르치니까.

죽만 먹은 아이는 거친 음식을 소화하지 못한다. 힘들어도 거친 음식을 먹여야 한다. 거친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 그게 문제해결능력이다. 깨우치는 즐거움을 잃지 않고 선행학습을 시켰다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점수 잘 받게 하려고 소화능력을 빼앗는 식의 선행학습이라면 아이가 불쌍해진다. 아이에게 선행학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모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대표님의 자녀교육법이 궁금하다. 듣기로는 자녀 4명 모두를 수재로 키우셨다는데.
▶2살, 3살, 4살 터울로 네 아이다. 애들이 어릴 때 서울에서 김포 시골로 이사를 갔다. 과외도 안 시키고, 학원도 안 시켰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부부는 교육문제에 있어서 마음이 잘 맞는 편이었다. 학원은 안 보냈지만 책은 많이 읽혔다. 책을 읽으면 용돈을 줬다. 애들이 돈이 필요하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타협하는 훈련을 시켰다. 자전거를 사고 싶다고 할 때 그냥 사주지 않았다. 비용의 일정 부분은 아이가 부담하게 했다. 예를 들어 새 자전거가 20만원이면 부모 부담금은 80%(16만원), 아이 부담금은 20%(4만원)다. 그런데 중고자전거를 5만원에 사면 아이 부담금은 1만원으로 줄어든다. 아이는 기꺼이 중고자전거를 산다. 이런 과정 없이 그냥 다짜고짜 중고자전거를 사라고 하면 아이가 과연 기쁜 마음으로 살 수 있겠나.

-자녀들은 지금 뭘 하나.
▶첫째는 시집을 갔고 막내가 대학생이다. 놀라운 건 우리 애들은 고등학교 때보다 대학교 때 공부를 더 잘했다는 점이다. 중고교 때 들볶지 않은 힘인 것 같다. 인내해준 힘.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할 이유를 찾고 행동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려줬다. 좀 느리고 더디더라도 그런 과정을 건너뛰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사람 말로는 동창들 사이에서 자신이 시기의 대상이라고 한다. 어떻게 학원 한 번 안 보내고, 과외 한 번 안 시키고 애들 전부 좋은 학교에 보냈느냐면서. 애들을 위해 별로 열심히 한 것도 없는데 복 받았다면서. 그런데 집사람은 억울해 한다. 야단치고 싶고, 간섭하고 싶고, 끼어들고 싶을 때 꾹 참고 기다려 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면서.

-부모의 간섭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사실 아이가 넘어지려 할 때 잡아주고, 부족한 게 있을 때 채워주고, 실패하려 할 때 구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넘어진 뒤의 아픔, 부족한 뒤의 간절함, 실패한 뒤의 고통도 아이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그런 체험이 축적이 돼야 아이가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성장하는 기회를 부모가 빼앗으면 곤란하다.

미숙하더라도 실패도 해보고 실수도 해봐야 한다. 정답을 가르쳐주지 말고 헤매게 하고 그 과정에서 깨우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깨우치는 기쁨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의사결정 하는 기회도 빼앗지 말아야 한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왜 뺏나. 부모가 욕심과 두려움을 떨쳐버리면 그게 가능하다.

-다시 욕심과 두려움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벼랑에 서봐야 한다. 법륜 스님이 말씀하셨다. 어떻게 두려움을 놓을 수 있나. 확 놔 버려라. 숯덩어리를 들고 있으면 뜨거워서 확 놓는다. 애를 잘 키운다고 죽만 먹였더니 소화력이 없어지는구나 깨달았다면, 탈이 나더라도 거친 음식을 먹여야 한다.

사실 초등학교 6년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려면 석 달만 공부하면 다 된다. 그러니 아이가 지금 잘 모른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기다려주고 인내하는 게 중요하다. 다들 저처럼 교육시키라는 의미는 아니다. 제가 다른 부모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할 자격도 없다. 다만 중요한 걸 간과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못 하지만, 적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 경험을 통해 증거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이정호 기자/사진=이정호 기자
-직장 후배들이 많이 따른다고 들었다.
▶직장생활 고충을 의논해 오는 후배들이 많았다. 고충 유형별로 정리를 해본 게 책으로까지 나왔다. 얘기를 들어보면 억울하다는 내용이 많다. 똑같이 일을 했는데 공을 가로채였다거나, 직장 상사가 한 사람만 편애한다거나 그런 내용들이다. 직장 상사는 환경 같은 거다.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날씨가 춥다고 날씨를 바꿀 수 있나. 그러려니 할 수밖에.

대신 이런 얘기를 해준다. 무능하면서 괴롭히는 상사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회사가 그냥 두질 않으니까. 유능하면서 괴롭히는 상사는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견디는 게 답이다. 보는 시각을 달리 하면 참아낼 구석이 생기는 거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억울함의 이면에는 욕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욕심을 비전이라고 포장하면서. 거기서부터 파생되는 고통이 상당한 데 말이다.

(김 전 대표는 5년 전부터 '바른경영 아카데미'라는 강사진을 만들어 경영과 리더십 등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데 수업료는 없다. 가입 조건은 ‘도움을 청하는 후배들이 있을 때 조건 없이 케어해 준다는 약속’이다.)

-후배들에게 경영수업을 하면 어떤 내용을 얘기하나.
▶경영자 머릿속에는 4개의 키워드가 있다. 첫째는 생존. 월급 제 때 나오는 회사는 행복한 회사다. 회사가 망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늘 경영자 머릿속에는 있다. 둘째는 고객의 마음읽기. 어떻게 하면 고객 마음에 들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셋째는 경쟁이다. 고객님은 나에게만 고객님이 아니다. 다른 회사들에게도 고객님이다. 넷째는 인재다. 인재를 어떻게 확보하고 만들어 갈 것이냐를 늘 생각한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행은 더 중요하다. 실행을 머뭇거리게 하는 요소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실패를 두 번만 하면 ‘멘붕’이 온다. 실패를 자주하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또 실패가 무서워서 아무 것도 안 하면 말라죽는다. 얼마나 실행하고 얼마나 실패할 것인가를 경영자는 판단해야 한다. 직원들이 하자는 걸 다 하면 거덜 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다 커트해 버리면 의견을 안 갖고 온다.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 그게 경영인 것 같다.

-‘성공의 기준을 바꿉시다’ 캠페인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기준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돈, 인기, 지위 이런 게 세상의 기준인데 사실 이 기준은 상대적인 거다. 돈이 적어도 아쉬운 점이 없으면 부자 아닌가? 사장이 되면 행복한가? 사장을 여러 번 해봤지만 그 자리는 숨이 턱턱 넘어가는 결정들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자리다. 아주 고통스러운 자리다. 인기도 마찬가지다. 인기 많은 유명인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겠나?

저마다 나름대로 성공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정말로 나의 행복을 위한 기준 말이다. 그렇게 가는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성공이지 않을까 싶다.

김준희 전 대표가 그린 프란치스코 교황김준희 전 대표가 그린 프란치스코 교황
◆김준희 전 대표는…
57년 닭띠, 경북 의성이 고향이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취업길이 막혔고, 어렵게 잡은 직장이 출판사였다. 1984년 웅진출판에 입사해 2002년 웅진닷컴(웅진씽크빅의 전신) 대표까지 올랐다. 2009년에는 능률교육 대표로 자리를 옮겼고 2012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바른경영 아카데미’의 대표코치 외에 ‘인물화 그리기’에 푹 빠져 있다.

은퇴 뒤 뭘 할까 생각하다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고 무작정 홍대 인근 화실을 찾았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그림에 손을 댄지 2년만에 상당한 실력의 고수로 성장했다. 테레사 수녀, 넬슨 만델라,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마음에 끌리는 인물 17명을 그렸고 가을에는 그림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책을 펴낼 예정이다. 인물화의 공통점은 ‘나에게 진정성이 느껴진 인물’이다. “잘 그리려고 한 게 아니라 즐겁게 그리려고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며 즐거운 일을 찾을 것을 권했다.

(대담 : 최중혁 사회부 교육팀장, 사진 : 이정호 인턴기자, 정리 : 모두다인재 정봄 기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진로 전문가 28인이 밝혀낸 잘못된 진로 정보 12가지를 담은 소책자를 출간하고, 학급 아이들에게 소책자를 보내는 시민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아래 링크를 열어 자세한 내용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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