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봤자 몇십원? '빈병' 모아 570억원, 다른 누군가 챙겼다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2015.07.06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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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순환 사회로 가는 길]①빈 병의 경제학… "소비자 빈병 반환율 24%에 그쳐"

편집자주 한국은 전형적인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단위 면적당 폐기물 발생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다. 미국의 7배, 독일 1.3배, 스웨덴 4.7배에 달한다.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폐기물=자원'이라는 인식 아래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고 발생된 폐기물을 적정하게 재활용, 회수, 처리하는 자원순환 사회로의 전환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자원순환 사회로 가는 길' 시리즈를 통해 현실을 냉정히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무촌리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이천제조창에 도착한 빈병이 생산공정 투입을 위해 옮겨지고 있다./사진=유영호기자 yhryu@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무촌리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이천제조창에 도착한 빈병이 생산공정 투입을 위해 옮겨지고 있다./사진=유영호기자 yhryu@


3일 찾은 경기도 이천시 무촌리에 있는 하이트진로 이천제조창. 이른 아침부터 야적장으로 대형 화물트럭이 줄지어 들어왔다. 트럭마다 물류센터에서 거둬들인 빈 병이 가득했다. 트럭 화물칸이 열리기 무섭게 지게차들이 연신 시끄러운 경고음을 울리며 빈 병을 실어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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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입된 빈 병은 야적장에서 잠시 보관됐다가 공장 안으로 옮겨졌다. 재사용을 위해서다. 생산설비에 투입된 빈 병들은 가장 먼저 선별기를 거친다. 맥주병 등 잘못 섞여왔거나, 파손된 병은 자동으로 분류돼 라인 밖으로 배출된다.



선별기를 통과한 병은 곧바로 세병기에 투입돼 세척이 이뤄졌다. 세척을 마친 병이 도착한 곳은 세척병검사기. 소주 주입을 앞두고 외부에 금이 가거나 내부에 이물질이 아직 남아 있는 병을 걸러낸다.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무촌리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이천제조창에서 수거된 빈병이 재사용을 위해 세병기(세척기)에 투입되고 있다./사진=하이트진로 제공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무촌리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이천제조창에서 수거된 빈병이 재사용을 위해 세병기(세척기)에 투입되고 있다./사진=하이트진로 제공
검사기까지 통과한 병에는 소주가 주입된다. 이물질 혼입을 막기 위해 소주 주입 즉시 왕관(뚜껑)이 씌워진다. 왕관 결합까지 마친 병은 다시 한 번 검사기를 거친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량제품을 걸러내기 위해 센서를 이용한 자동검사기와 별도로 직원들이 직접 눈으로 검사하는 과정도 거친다. 집중도가 높은 과정이다 보니 팀 단위로 10분에 한 번씩 교대가 이뤄진다. 이 과정까지 통과한 병은 라벨링 작업을 거쳐 출하된다.



현장 안내를 맡은 마정호 하이트진로 생산기획팀장은 "하루에 약 400만 개의 빈 소주병이 들어온다"며 "하루 소주 출하량(450만 개)의 약 90%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마 팀장은 "빈 병 재사용은 제조원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기업과 환경의 이해가 일치하는 몇 안 되는 이슈"라고 말했다.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무촌리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이천제조창에서 세척을 마친 빈병이 재사용을 앞두고 세척병검사기를 통과하고 있다./사진=하이트진로 제공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무촌리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이천제조창에서 세척을 마친 빈병이 재사용을 앞두고 세척병검사기를 통과하고 있다./사진=하이트진로 제공
일반적으로 폐기물은 재활용이 중요하다. 하지만 유리병은 예외다. 녹여서 다시 유리제품을 만드는 재활용보다 온전한 빈 병을 세척해 다시 사용하는 재사용이 환경에 훨씬 낫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빈 병의 연평균 출고량은 53억 병이다. 이 가운데 50억 병이 회수돼 45억 병이 재사용된다. 회수율은 95%, 재사용률은 85%다. 병 당 재사용횟수는 8회다. 모두 선진국보다 크게 떨어진다.

독일은 빈 병 재사용률이 95%에 재사용횟수가 19회이고, 일본은 재사용률 94%에 재사용횟수가 28회에 달한다. 덴마크와 핀란드도 재사용률(재사용횟수)은 각각 97%(32회)와 97%(30회)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빈 병의 재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빈용기 보증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85년 도입해 각 부처별로 운영했던 공병보증금제도를 보다 체계적인 자원순환을 위해 2003년 환경부로 통합되면서 빈용기보증금제도로 이름을 바꿨다.

빈용기보증금제도는 보증금이라는 경제적 유인을 활용해 빈 병의 회수 및 재사용을 촉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비자들이 소주병이나 맥주병을 소매점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구조다. 다시 소매점은 도매상에, 도매상은 제조사에 빈 병을 반납해 보증금과 취급수수료를 정산 받는다.

현재 빈 병 보증금은 △190㎖ 미만 개당 20원 △190~400㎖ 개당 40원 △400~1000㎖ 개당 50원 △1000㎖ 이상 개당 100~300원이다. 현재의 보증금은 신병 가격대비 소주 29%·맥주 28% 수준이다.

문제는 개당 보증금이 낮다보니 소비자들의 빈 병 재사용에 대한 관심도 매우 낮다는 것이다. 소매점에 소주 10병을 반환해도 손에 쥐는 보증금은 고작 400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소비자가 구매한 17억8000만 병 중 4억3000만 병(24%)만이 소매점을 통해 회수됐다. 소비자들이 반환을 포기한 빈 병 대부분은 분리수거 등을 통해 수집상의 손에 넘어갔다. 이렇게 수거되는 빈 병은 수거 과정이 복잡해 파손율이 높다.

반면 지난해 도매상이 유흥업소에 판매한 소주와 맥주 31억6000만 병의 빈 병은 전량 회수됐다.

지난해 소비자들이 포기한 빈 병 보증금은 모두 합산하면 570억 원에 달한다. 개당 보증금이 적다 보니 소비자들이 빈 병을 반환해 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수백억 원이 버려지는 셈이다.

홍정기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관은 "핀란드, 독일 등 주요국의 빈 병 재사용률이 높은 비결은 신병 가격 대비 적어도 70% 이상으로 책정된 빈 병 보증금 때문"이라며 "보증금 인상과 함께 국내 빈 병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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