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스콧은 인생 최고의 조언으로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던 동료의 한 마디, "(회사 내에서) 고속 승진 가도를 버리고 창업가가 돼라"를 꼽았다.
더욱이 그는 연구소에서 고속 승진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2년 만에 총 4번 승진했고 한 부서 전체를 맡아 관리하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지식인을 넘어 모든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벨 연구소의 기치는 아직 세상에 받아들여 지지 않았으나 그는 연구소에서 그리고 소수의 디지털 전문가 세계에서 '디지털 선구자'로 촉망받았다.
하지만 탭스콧은 "동료의 조언은 어리석은 말처럼 들렸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그 조언을 따랐다"며 "지금와서 보면 이 조언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돼 줬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와 동료의 시도는 그리 성공적인 결실을 맺지 못했다. 새로 개발한 기술은 다른 기업에 팔렸고 IPO에도 성공했으나 그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지 못했고 마침내 회사의 경영권을 잃은채 첫 창업은 끝이 났다.
탭스콧은 그러나 "첫 창업의 유산은 위대했다"고 강조했다. 그와 동료들은 창업 이후 각자 흥미로운 작업들을 이어갔고 그 자신은 1992년 '패러다임 시프트'를 펴낸데 이어 '디지털 경제'(The Digital Economy), '그로잉업 디지털'(Growing Up Digital) 등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출간했다. 또 컨설팅 회사들을 설립해 경제적 부와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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탭스콧은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나의 초기 꿈 보다 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왔다"며 "지금에와서 보니 내 인생의 전환점은 바로 내가 창업가가 된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도 사람들이 인생의 길을 선택을 할 것이다. 대학 졸업자들을 위한 좋은 직장은 더욱 줄어들고 있지만 인터넷은 작은 회사들이 큰 기업과 같은 건물이나 조직 체계 없이도 충분히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 또한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경험하겠지만 창업은 가치있는 일"이라며 "그러니 오래전 동료가 내게 해줬던 그 조언을 이제는 내가 여러분에게 건네는 조언으로 받아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