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75세, 매출 3.5억 시골기업의 '유쾌한 반란'

머니투데이 세종=정혁수 기자 2015.05.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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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증가, 농업의 '6차 산업화'로 지역 농업 경영체 성공 잇따라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농촌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많은 시골 젊은이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정든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향했고, 그 빈 자리는 고스란히 노인들의 몫으로 남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고, 활력이 넘치던 마을은 정적이 감돌았다. 농촌의 위기였다.

주변 상황이 바뀌면 '음지'가 '양지'가 되는 게 세상 이치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다.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와 웰빙(well-being) 생활을 꿈꾸는 중년층, 또 농업을 소재로 한 예비창업자들이 농촌으로 향하고 있다. 귀농·귀촌인구가 증가하면서 농촌은 이제 '기회의 땅'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도시의 삶에 익숙한 이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는 힘은 무엇보다 달라진 농촌환경이다.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한데다 자신만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면 도시 못지않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업(1차산업)과 제조업(2차산업)에 서비스업(3차산업)을 합한 이른바 '6차산업화'가 이들의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

충남 당진 백석올미마을기업은 전통한과 만들기 체험으로 농가수익은 물론 지역공동체 활성화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사진=농촌진흥청충남 당진 백석올미마을기업은 전통한과 만들기 체험으로 농가수익은 물론 지역공동체 활성화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사진=농촌진흥청


◇어르신들 자신감 고취로 마을에 활력 넘쳐=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충남 당진시 순성면 백석마을은 요즘 도시민들로 북적인다. 창업을 꿈꾸거나 성공적인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성지(聖地)'로 통할 정도다. 한 해 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시골 마을기업 '백석올미영농조합법인' 때문이다.



이 마을 전체 100여 농가 중 절반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백석올미영농조합법인의 주 생산품은 '매실한과' '매실고추장'으로 한과와 약과 등 모든 원재료가 조합원들이 직접 가꾼 농산물로 충당되고 있다. 조합원 51명중 46명이 여성이고, 평균연령은 75세에 달한다. '뒷방' 신세를 벗어난 할머니들의 '유쾌한 반란'이라 할 만 하다.

활력을 잃어가던 마을의 변화는 지난 2008년 귀촌한 김금순씨(64·여)로부터 시작됐다. 잘 나가던 대기업 임원의 아내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김씨는 고향으로 귀촌을 결심한 남편 덕에 순식간에 '당진댁'이 됐다.

"시골생활에 대한 이해가 없었지만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모든 게 신기하더군요. 불편을 겪고있는 주변 분들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레 주민들과 친해지게 됐어요"


평소 성실한 모습을 눈여겨 보던 주민들은 김씨를 부녀회장으로 추대했고, 동네 어르신과 불우이웃 기금마련을 위해 시작한 한과 만들기는 이내 마을기업을 출범하기까지 이르렀다. 부녀회원들이 솜씨를 발휘해 찹쌀 10kg으로 한과를 만들어 지역 매실축제에 내다판 것이 지난 해에는 찹쌀 5톤 생산, 연매출 3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자신들이 농사지은 원재료를 소비자 가격으로 수매하다 보니 조합원들이 따로 판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또 생산제품은 농협 하나로마트를 비롯해 '당진팜' '충남농사랑' 쇼핑몰 등 온라인 판매와 지역축제 현장판매 등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김 대표는 "할머니들이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생활패턴 자체가 바뀌는 것 같다"며 "올해는 기존 사업에 관광·체험 프로그램을 연계해 연 매출 5억원이 가능하도록 노력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충남 공주 '이삭마을'을 찾은 꼬마손님들이 김장담그기 체험프로그램에 참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사진=농촌진흥청충남 공주 '이삭마을'을 찾은 꼬마손님들이 김장담그기 체험프로그램에 참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사진=농촌진흥청
◇평범한 회사원서 농업 신지식인으로 '변신'= "직접 알밤을 공수해 농장에서 '알밤 줍기 행사'를 열었어요. 아마 이 지역에서 이렇게 한 건 저희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알밤 고추장'으로 유명한 충남 공주 이삭농원 육범수(52) 대표는 원래 인천에서 활동하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15년전 어느 날, 이웃으로부터 "된장이 너무 맛있다. 좀 팔 수 없겠냐"는 칭찬을 듣고 전통장 시장에 대한 '촉'을 느낀 육 대표는 과감히 공주행을 감행했다.

"어머니가 솜씨가 좋으셨어요. 어머니가 만든 된장이 시중에서 유통되는 개량된장보다 명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전통장이 훌륭한 상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지역특산물인 밤을 연계한 상품개발, 끊임없는 연구개발, 원재료 선정부터 상표 디자인 등에서 찾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전통장은 '세월이 만든다'는 신념으로 좋은 장을 만들기 위해 '3년 숙성' 원칙을 지켜 나갔다.

충남 공주는 전국 밤 생산의 90% 가량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주산단지다. 그는 지역 농업기술센터 자문을 구해 알밤을 전통장에 활용한 상품개발에 나섰다. 주변에서 '알밤은 알밤이고, 고추장은 고추장이지 무슨 알밤고추장이냐'는 곱지않은 시선도 많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다.

결국 단 맛을 내는 알밤고추장 개발에 성공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신지식인농업인장상 수상과 본격적인 제품 판매에 나설 수 있었다. 육 대표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02년부터는 전통장 생산과 알밤줍기 행사 그리고 전통 먹거리 체험 등을 주제로 한 교육농장을 운영, 3차산업에 뛰어 들었다.

체험행사도 알밤 두부 만들기, 알밤고추장, 청국장 및 김장 담그기 등으로 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의 귀농은 전통장 개발에 대한 '촉'에서 비롯됐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준비과정은 치밀했다. 귀농에 앞서 일본으로 8번의 출장을 오가며 농촌관광과 지역특산물 가공에 대해 연구했다. 관련 사진만 해도 수 만장을 찍고 모았다. 관련 상품판매가 본격화되면서 지역 주민 5명을 포장 및 생산 업무에 고영,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육범수 대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전통장을 직접 담글 수 있도록 관련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힘쓰고 있다"며 "어머님의 손 맛에서 시작한 전통장을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만들어 내 겠다"고 말했다.

이삭농원의 지난해 매출은 5억원 규모다. 1차산업인 밤 생산을 통해 1000만원~1200만원, 2차산업인 전통장류 생산·판매에서 4억5000만원을 벌었다. 또 알밤두부, 알밤고추장, 청국장만들기, 김장담그기 등 관광·체험(3차산업)에 힘써 4000만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했다.

DMZ-train 플랫폼에서 열리는 반짝장터에서 관광객들이 연천옥계마을의 특산품과 가공품들을 구경하고 있다./사진=농촌진흥청DMZ-train 플랫폼에서 열리는 반짝장터에서 관광객들이 연천옥계마을의 특산품과 가공품들을 구경하고 있다./사진=농촌진흥청
◇연간 32억 매출…옥계마을의 '반란'= 민통선 인접지역인 경기도 연천군이 '최고로 농사짓기 좋은 마을'로 손꼽히는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북녘에 가깝다 보니 그만큼 외질 수밖에 없고, 개발이 낙후되다 보니 오염이 덜 돼 청정 농특산물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같은 요소들을 발전의 기회로 삼은 마을이 있다. 민통선으로 가는 출입로인 소리개 고개는 아트로드(art-road)로 조성하는가 하면 농가 곳곳에 방치된 폐농기계를 수거해 두루미조형물을 제작하는 등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마을 자체가 백화점 간판이고, 주민들은 입점업체라고 보면 됩니다. 마을이 소비자를 끌어오고 판로를 만들면 주민들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내건 상품들을 진열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차석현 연천옥계마을 운영위원장)

마을은 이를 위해 원하는 농가에는 누구나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주고, 개별농가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스티커 제작은 물론 포장재, 택배 박스 등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하루 150명의 인부가 고용되는 등 일자리 창출도 활발하다.

옥계마을이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로 꼽히는 이유는 사계절 특색있는 농사체험과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 때문이다. 봄에는 도라지·더덕 캐기 체험, 여름에는 물놀이 체험, 가을에는 콩 수확 등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이 밖에도 꽃물 들이기, 염색체험, 짚풀공예 체험 등 다양하다.

매일 오후 4시34분, DMZ트레인이 도착하는 연천역 '반짝장터'는 유명하다. 정차시간 16분을 이용해 열리는 이 장터는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이 마을 어르신들이 저마다 특산물과 수공예품을 들고 나와 관광객들을 맞는다.

지난해 이 마을 영농조합법인은 3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벼 9억원, 콩 6억원, 율무 8억원 등 농산물 생산을 통해 28억원을 벌었다. 또 지역 농산물인 쌀, 콩 등을 이용해 만든 장류판매를 통해 2억원, 농사체험 등에서 2억8000만원을 기록했다.

차석현 위원장은 "고품질 농산물 판매와 반짝장터에 나선 노인분들의 활약에 힘입어 마을경제가 탄력을 받고 있다"며 "앞으로 주민 소득증대를 우선으로 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국내 최고의 농촌마을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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