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너무 올라 불안해요” vs “이제 시작이거든”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5.04.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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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90>상승-하락 반복에 학습된 투자자들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최근 한 달간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어요. 지금 ELT(주가연계신탁)에 들어가는 건 조심해야 합니다.”

엊그제 만난 강남의 한 은행 PB는 요즘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파생금융상품인 주가연계신탁(ELT)을 권유할 때 공격적인 상품은 무조건 피하고 매우 안정적인 상품들만 골라 추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소에도 보수적인 편인 그가 요즘은 더욱 보수적으로 변한 것이다.

그 이유는 “주가가 최근 너무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이 시점에서 ELT같은 파생금융상품에 진입하는 건 현명한 투자가 아니라며 “주가가 추가로 상승하기보다 하락할 확률이 아무래도 더 높아 지금 들어가면 상투를 잡을 위험성이 크다”고 고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은행에서 고객들에게 제시하는 ELT상품들을 보면 그동안 상승장을 주도했던 홍콩의 H지수가 ELT 기초자산에서 빠져 있는 것들이 눈에 띈다. 홍콩 H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20% 가량 상승하며 일본의 니케이225지수나 한국의 KOSPI지수보다 훨씬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하지만 홍콩 H지수가 기초자산에서 빠지게 되면 ELT 수익률은 거의 2% 포인트 가까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에서 뺀 ELT 상품들이 속속 나오는 이유는 홍콩 H지수가 너무 많이 올라 불안하기 때문이다. 보통 때 같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더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려고 안달할 텐데 지금은 수익률이 문제가 아니라며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은행 PB도 고객들에게 수익률이 낮아도 홍콩 H지수가 빠진 ELT를 적극 권유하고 있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주가가 많이 오르면 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급증한다. 반면 신규 가입은 주춤하는데 그 이유는 고점에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게 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가가 저항선을 뚫고 계속 상승하지 않는 한 투자자들의 이러한 매매 패턴은 아주 합리적이다.

게다가 이미 지난 수년 간 주가가 특정 범위 내에서 상승과 하락을 계속 반복해 온 사실을 깊이 학습해 온 투자자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러한 매매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주가가 이처럼 특정 범위 내에서 오르고 내리는 걸 반복하지 않게 되면 이를 깊이 학습했던 투자자들은 큰 혼동에 휩싸이게 된다. 미국 증시의 경우 지난 5년 간 별다른 조정 없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그동안 상승과 하락 패턴에 학습돼 왔던 수많은 증시 전문가들이 “이제 하락한다, 조정이 온다” 외쳤지만 단 10%의 조정도 겪지 않았다.

재밌는 건 똑같은 비관론자들이 몇 달 간격으로 증권방송에 나타나 “이번엔 정말 다르다”고 떠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증시는 이번 주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가 드디어 15년 전에 기록한 최고치를 뚫었다. 15년 전이면 우리가 증시 거품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2000년 초반이다. 다우지수는 약 한달 전에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고 S&P500지수는 이번주 들어 연일 최고치를 새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 증시의 경우도 아베 정권이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쓴 지난 2년간 줄기차게 상승했다. 시장원리에 어긋난 비정상적인 정책이기에 그 효과가 금방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도 무수히 많았지만 일본 니케이225지수는 이번 주 들어 15년 만에 2만선을 넘어섰다.

미국과 일본 증시의 멈출 줄 모르는 상승 배경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양적완화(QE) 정책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양적완화정책이 중단되고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 증시 상승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조짐이 금방 나타날 것 같지 않다. 결국 그 때까지 상승장은 멈추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한국 증시의 최근 상승세는 고작 몇 달이 안 된다. 업종에 따라선 지난해 말부터 오른 것도 있지만 코스피지수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건 3월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시점 이후다. 그리고 추가 금리인하를 예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한국에서도 유동성이 증시 상승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요즘 한국 증시는 미국 증시가 하락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외국인이 연일 한국 주식을 수천억 원어치씩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올해 지금까지 한국 증시(코스피와 코스닥)에 쏟아 부은 자금은 약 7조2300억 원인데 거의 대부분(약 7조600억 원)이 3월 부터 유입됐다. 3월은 다름아닌 한국은행 금리인하가 있었던 시기다.

외국인이 제공하는 유동성이야 변덕이 상당히 심하지만, 최근 미국 주식시장에서 이머징 마켓으로 투자를 돌리라는 주문이 틈틈이 나오는 걸 보면 외국인의 주식자금 유입도 금방 멈출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의 루스 코에스테리치(Russ Koesterich) 수석 투자전략가는 이번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미국 주식 비중을 축소하고 좀 더 싼(=덜 오른) 다른 나라 주식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미국 주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게 이유.

이번 주에 만난 아주 오랜 친구들 모임에서도 주식 얘기는 자연스레 흘러 나왔다. 은행 PB 말대로 “주가가 최근 너무 많이 올랐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 보면 ‘그렇겠구나’ 생각하는 찰라, 한 친구가 동의하기 어렵다는 듯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이제 시작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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