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키우는 AIIB…세계은행과 맞설까, 손잡을까?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5.03.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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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다. 중국 주도로 올해 말 출범할 예정인 AIIB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국제금융기구 질서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AIIB 설립에 나선 게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미국과 몇몇 동맹국들이 주도한 기존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 가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국제금융기구 내에서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AIIB 설립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IMF의 경우 미국은 의결권 지분 16.75%를 갖고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하지만 중국의 지분은 3.81%밖에 안 된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자국의 지분을 경제 규모에 맞게 확대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이런 정황은 AIIB 설립이 국제금융기구를 둘러싼 세계 양강(G2)의 패권경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예상을 낳게 했다. AIIB가 미국과 동맹국이 주도하는 ADB, 더 나아가 세계은행, IMF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미국은 AIIB가 결국 중국의 정책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동맹국들의 가입 행렬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의 AIIB 설립 움직임에 미국처럼 과잉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AIIB 참가국이 유럽 등 역외국가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중국의 세가 약해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IIB가 세를 불리는 것을 중국의 패권 확대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신문은 특히 중국이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에서 신흥국 진영을 대변해 적극적으로 지분 확대를 요구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오히려 세계은행이나 IMF 내에서 커진 영향력이 신흥시장에서는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주도적인 역할을 피했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대신 신흥국을 상대로 직접 자금 지원에 나섰지만 힘에 부치게 됐고 결국 다자가 참여하는 새 개발은행 설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AIIB가 기존 국제금융기구와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국무부 차관을 지낸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도 AIIB를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했다. 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회견에서 중국이 AIIB를 설립하려는 것은 아시아 지역의 기반시설(인프라)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인프라 재원 마련은 신흥시장에 매우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다자가 참여하는 AIIB는 역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정부가 오히려 초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AIIB 내에서 투명성, 지배구조 등 주요 이슈를 주도할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졸릭 전 총재는 AIIB가 세계은행과 맞설 것이라는 우려도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총재로 있을 때 세계은행은 중국 싱크탱크와 경제개혁 청사진을 함께 마련한 것은 물론 중동지역 개발펀드와 지역 은행 등 외부 금융기관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가 세계은행 총재로 계속 있었다면 AIIB를 파트너로 껴안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졸릭 총재는 또 미국 정부가 동맹국들의 AIIB 참여를 저지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꼬집었다. 새 국제금융기구를 제안하거나 인프라 투자 등 공동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새 투자계획을 내놓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기계적으로 중국의 제안을 반대할 게 아니라 중국이 세계 경제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IB는 과거 '실크로드'처럼 중국 베이징에서 이라크 바그다드까지 철도 직통노선을 건설하는 등 대규모 기반시설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은행으로 올해 말 출범할 예정이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초기자본금 500억달러를 출자하기로 약속하고 은행 설립을 주도해왔다. 자본금은 앞으로 1000억달러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은 이달 말까지 가입 신청을 받아 다음달 15일까지 AIIB 창립회원국을 확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AIIB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21개국이 서명한 이후 26일까지 한국을 비롯해 모두 37개국이 가입 행렬에 동참했다. 이는 ADB 회원국 수(67개국)의 절반을 훌쩍 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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