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준에 맞춘 '포장된 일상'…외로움과 두려움때문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 홍재의 기자 2015.03.25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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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없는 사회/'나'를 잃고 '너'에 기대다] <下> '자신에 대한 사랑'

편집자주 ‘힐링’의 시대가 가고 ‘자존’의 시대가 왔다. 지난 몇 년 간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던 위로 키워드인 ‘힐링’이 감정을 밖에서 안으로 수렴하는 수동적 태도로 접근했다면, ‘자존’은 숨겨왔던 자신의 내면을 타인의 눈치없이 외부로 드러내는 능동적 몸부림이다. 하지만 2015 대한민국은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댓글에 영향받고 움직인다. ‘허니버터칩’ 사태에서 보듯, 품귀 현상을 빚는 대열에 끼지 못하면 낙오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뒤처짐의 느낌은 자존감 바닥의 일부 세태를 대변하고 있다. 다양성이 요구받는 시대에, 획일성이 지배하는 모순적 상황을 타개하는 일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를 잃고 ‘너’에 기대는 자존 상실의 시대를 조명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포장된 일상'…외로움과 두려움때문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좋아요’ 반응의 수는 힐링과 상실감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다. ‘좋아요’ 반응이 없으면 우울하다는 기분마저 든다는 게 일부 이용자들의 전언. 이유를 물어보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대꾸하기 십상이다.



타인의 반응에 자존의 상대적 크기를 느끼는 SNS 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풍족한 혜택을 받고 자란 경우가 많다. 세계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고 가족 여행을 주기적으로 다니며 다양한 체험학습을 경험한다. 인터넷을 통해 유명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엿보거나 해외 트렌드를 접하면서 이상의 문화적 삶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갈수록 커지는 문화 욕구를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보고 들은 건 많은데,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이를 실현시킬 능력이 안될 경우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과소비를 통해 일상을 ‘포장’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자신의 존재력을 ‘증명’받는 길이기도 하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는 “유행에 휩쓸려 소비하거나 경제력 이상의 물건을 사는 행위는 타인에게 나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이라며 “나의 정체성을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확인받으려는 태도는 SNS 세대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꼬집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소비를 통한 ‘일상 조작’이나 ‘일상 과시’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설명된다.

윤 교수는 “‘내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은 정체성과 관련되는데, 그 자체는 건강하지만 나의 정체성을 드러낼 물건이 ‘나’보다 더 중요해지는 순간, 그것은 ‘가짜 정체성’이 될 뿐”이라며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이유는 나를 가치 있는 존재를 만드는 데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강박’과 부정적 시선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과시소비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이택광(경희대 영문과 교수) 문화평론가는 “소비는 ‘상품’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추는 방법”이라며 “개인의 능력은 ‘희소가치’에 대한 구매력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인데, 너무 튀면 ‘기괴함’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적정한 선’에서 희소성과 일반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포장된 일상'…외로움과 두려움때문
이는 행복의 정의에 대한 오류로도 설명된다. 10명 중 기껏해야 1명 정도가 자신을 좋아하고, 7명은 무관심하고 2명은 싫어하는 게 일반적인 관계의 룰인데, 10명 모두 자신을 좋아해야 행복이 가능하다고 믿는 행복의 오류에서 자존감을 느끼는 시각 자체가 뒤틀려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 외로움을 극복하기위해 SNS 활동을 통해 타인의 반응을 살펴보는 행위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라며 “하지만 활동에 몰두할수록 과도하게 치장한 자신의 가짜 정체성에 지쳐버리는 ‘외로움의 역설’도 피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는 선택 장애나 의존적 성향 역시 완벽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불안장애의 요소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완벽에 대한 강박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분위기에선 나의 모든 선택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불안 심리를 해결하기위해 유경험자의 의견, 즉 타인의 반응을 살피고 따라가는 것”이라며 “결국 ‘집단 규범’에 속해있다는 안정감속에서 동조소비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타인의 눈치나 시선없이 자존감을 높이기위한 방법은 없을까. 개그맨 출신 권영찬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상담코칭심리학과 겸임교수는 ‘동기부여’라는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스펙을 쌓더라도 어떤 일을 사랑하고 빠져들기 위해 쌓는 스펙은 자존감이 높은 스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영어공부의 목적이 남들도 하는 필수과정이어서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회사에 입사하기위해서인 것처럼. 권 교수는 “최저시급에 반말 듣는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 자존감이 낮은 일이지만, 창업이나 경영을 배우기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자존감 높은 아르바이트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자존감이 낮은 이들일수록 매일 아침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무석 전남대 정신과 교수는 “자존감은 사회적 위치나 성형수술을 통해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간판으로 상처를 가릴 수 있지만, 내적인 열등감은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결국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감(Being)에 대한 사랑, 자신의 꿈에 대한 열정의 크기에 달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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