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전셋값'에 '건보료폭탄'까지…집주인은 안 내는데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2015.03.06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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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확정일자 자료 활용해 세입자 건보료 부과…집주인은 2000만원 이하 유예

/그래픽=이승현 머니투데이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머니투데이 디자이너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자영업자 장 모씨(40)는 지난 2월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아본 후 분통이 터진다. 월 15만4380원에서 무려 21%(3만2240원)나 오른 18만6620원이 부과돼서다. 갑자기 크게 오른 보험료에 놀라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하니 "2억원이던 전세가격이 4억원으로 크게 올랐기 때문"이란 답변을 들었다. 최근 치솟는 전셋값 부담과 애들 교육을 위해 이사한 게 화근이 된 것. 부족한 전세보증금 2억원을 마련하느라 진을 다 뺐는데 여기에 건보료 폭탄까지 맞은 셈이다.



이처럼 급등하는 전·월셋값이 건보료 인상으로 이어져 집없는 서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소득과 재산이 늘어나는데 따른 보험료 인상은 당연하지만, 은행에서 빌린 전세보증금을 실제 가계소득과 재산 증가로 볼 수 있는지 논란거리다.

그럼에도 정부가 앞으로 확정일자가 부여된 전·월세 계약서를 토대로 건보료를 걷겠다고 나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2월 확정일자 자료를 토대로 주택 임대소득을 정확히 걷겠다고 한 후 집주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3년간 과세를 유예시켜 준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2000만원 이하의 임대소득자는 직장 피부양자 등록을 유지시켜줘 건보료를 한 푼도 안내도 돼 부과체계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확정일자가 부여된 전·월세 계약서를 국토교통부로부터 건네받아 건보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동안 주변 시세를 감안해 지역가입자 가구의 전·월세 금액을 평가하다보니 실제 금액과 건보공단의 평가액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온 데 따른 조치다.

물론 정확한 건보료 책정은 가능해졌지만 문제는 전·월세 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여서 집없이 사는 서민들의 보험료 부담은 더 커질 것이란 점이다. 그동안 전·월세 금액을 축소 신고했던 가구는 '건보료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역가입자는 전·월세금을 재산으로 간주, 보험료 산정에 반영하기 때문에 전·월세금에 따라 보험료도 함께 오르고 내린다. 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우리나라 건강보험료 납부대상 중 지역가입 가구수는 782만5054가구다. 이중 전·월세 세입자로 신고해 건보료를 납부하는 지역가입자는 258만5882가구(33%).

이들의 토지·소득·자동차 등을 제외한 순수 전·월세 금액만으로 부과되는 보험료는 285억9000만원으로, 가구당 월 1만1057원의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세입자들은 자신들이 내는 전·월세금 때문에 월 1만원을 추가로 건보료로 내는 것이다.

소득증가 등 자산이 늘어 크고 좋은 집으로 전·월세를 옮겨가는 경우는 건보료를 더 낸다고 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집에 계속 세들어 살면서 급등한 전·월세금을 내려고 빚까지 얻는 형편의 서민들에게 건보료까지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한 관계자는 "2012년부터 부동산가격 폭등에 따른 건보료 과다인상을 방지하기 위해 10% 상한을 뒀고 기본공제 제도도 두고 있지만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소득 중심의 건보료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보니 수천만원 보증금 마련도 힘겨운 서민 세입자도 건보료가 따라서 올라가는 폐단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전·월세 임대소득을 받는 집주인들은 '직장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으면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사업·임대소득이 없다고 신고하면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데 임대소득에 대한 통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다보니 피부양자 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게 공단의 설명이다.

이에 정부가 지난해 '2·26 주택임대차 선진화방안'을 통해 전·월세 확정일자를 활용, 주택 임대소득에 대해 정확히 과세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임대소득이 노출되면 직장 피부양자 자격이 안돼 '건보료 폭탄'을 맞는다며 집주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정부는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 집주인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해주기로 했다. 세입자들은 전·월세금에도 건보료를 내는 상황에서 집주인들에게는 2000만원이란 소득이 있음에도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세무전문가는 "전·월세금 인상으로 세입자는 건강보험료가 올라도 실제 자산가치가 높아진 집주인은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된다"며 "이런 보험료 부과체계의 불합리한 요소는 자칫 건강보험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정책적 고려와 개선이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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