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미국 국무부 차관 웬디 셔먼의 이른바 ‘한중일 과거사 공동책임론’을 독일과 이스라엘로 바꿔 본 가상의 발언이다. 셔먼은 삼일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27일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동북아 지역의 과거사에 대해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책임이 있다” “한국과 중국이 소위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내용, 심지어 다양한 바다의 명칭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이해는 가지만 실망스럽다” “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등등의 발언을 했다.
셔먼 발언이 있기 1주일전 영국 BBC방송은 “독일 검찰이 94살 먹은 전 나치친위대원을 찾아내 기소했다”고 전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복무할 당시 수용자 3681명의 살해를 방조한 혐의라고 했다. 앞서 2월초 독일 검찰은 93세의 할머니도 비슷한 혐의로 조사했다. 종전 70년이 됐어도 독일의 과거청산은 끝이 없다. 단죄에는 나이를 가리지도 않는다.
같은 선진국이라도 이렇게 다르다.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특히 최근 몇 년간 자기네들이 저지른 일제 시대의 만행 사실을 덮거나, 막거나, 숨기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아베 총리가 등장한 이후 이런 '작업'은 더욱 교묘해졌다. 일본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역사 왜곡을 위한 ‘로비’도 서슴지 않았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 투입도 마다하지 않았다. 올해 관련 예산만 4770억원이 넘는다.
말하자면 돈과 말재주를 동원해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려는 전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셔먼 발언이 바로 이런 작업의 성과물이 아니냐 하는 분석 때문이다. 이미 미국 정치판에는 친일파, 지일파들이 세를 얻고 있다. 전 미국 상무부 차관 로버트 샤피로도 지난해 12월 우리 대통령에게 "현재 한일 갈등은 한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일본이 워싱턴을 돈으로 사고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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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 발언 이후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우리 외교부는 3일 논란이 확산되자 부랴부랴 "엄중 대응하겠다"고 뒤늦게 나섰다. 이런 외교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은 영 미덥지 못하다. 당장의 "엄중 대응"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큰 틀에서 일본의 대대적인 '역사 왜곡 홍보전'에 맞서야 한다. 나무보다 숲을 보란 얘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외교부는 지난해 정부업무평가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생각해보니 동맹국인 미국의 국무부 서열 3위 셔먼의 이번 발언만으로도 그런 점수 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