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지망생에서 러시아 최고 작곡가 된 차이코프스키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2015.02.27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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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45>전통을 버리지 않은 위대한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법률가 지망생에서 러시아 최고 작곡가 된 차이코프스키


고전은 늘 관대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고전은 인간의 모든 심성이 언제나 그리고 언제든지 되돌아 올 수 있는, 마지막 고향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고전은 푸근함과 안정감과 더불어 심신을 편히 쉬게 하여 육신을 품어주는 것 같다.
각 나라가 지닌 그 나라의 고전은 이상하게도 전 세계인의 고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오른 지역들은 모두 그 나라의 가치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대대로 전통적으로 후대에까지 지켜져 내려오는 곳이다. 이처럼 사람의 공감대를 가장 보편적으로 인지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심성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모스크바에 가기 전, 39년을 한국에 살았다. 그리고 마흔에 한국을 떠나 17년을 모스크바에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을 보고 처음 느낀 것이 한국의 모든 능선이 그리 아름답다 였다. 그것은 거의 충격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한옥에 반했고 한옥의 기와지붕의 선이 정말 아름다웠고 길가의 작은 풀들의 초록색이 사랑스러웠고 구부러지지만 유연하게 연결되는 지방 도로의 흐름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 모든 것들은 아마 한국의 고전일 것이며 가장 클래식적인 형태일 것이다.

러시아에 살면서 그들의 가장 고전적인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문학과 음악, 우주선을 세계에서 제일 먼저 쏘아올린 기초과학, 호수 위의 우아한 백조들의 발레, 빙상 위의 예술인 피겨스케이팅 등등 여러 가지가 머리 속을 날아다녔다. 모두 러시아를 대표하는 종목들이었다. 이들 중에서 지금까지 거의 독보적으로 매김질 하고 있는 것들이 많지만 필자는 감히 음악을 꼽고 싶다. 이유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으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달래주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고전 음악가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아마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는 고전음악 작곡가로 가장 유명할 것이다.

그는 채광 기사의 아들로 우랄 산맥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머니는 프랑스 여인으로 간질을 앓았으며 신경과민적인 기질이었으나 어린 아들 차이코프스키를 극진하게 돌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건강염려증을 물려받았고 평생 건강에 대해 예민함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가 8살 때 온 가족이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사해 법률학교의 소년부에 입학해 법률가가 될 기본교육을 받았다. 이 쯤 그의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났고 그를 지극한 정성으로 감싸던 어머니가 콜레라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일생동안 그 충격에 사로잡혀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어머니를 사랑했고 잊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나 곧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음악원이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 입학했다. 음악원에서 그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피아니스트 니꼴라이 루빈스타인을 만나고 루빈스타인이 설립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화성법을 가르치게 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러시아인의 광활함과 프랑스인의 섬세함이 열정과 서정성에 나타난다. 한없이 음울하고 슬프고 그러다가 갑자기 패기가 넘치고 사랑이 꿈틀거리는 듯한 나른한 음색들로 가득 차 있다. 이로 인해 그만의 특별한 매력이 넘친다.

이는 차이코프스키의 격렬하고 극단적인 성격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곧장 우울증에 빠졌고 극단적으로 낙관적인 성격으로 변하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생 동안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욕망과 동성애적인 성향에서 갈등했다고 전해온다. 그렇게 평생을 갈등하며 고통 속에 살며 작곡을 했는데 그의 음악을 듣는 우리는 왜 힐링이 되는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신만이 아실 일이다. 그것은 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결혼을 하고 자실 직전까지 이르고 몇 주만에 동생 집으로 도피하고 그 후 아내를 본 적이 없이 살았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폰메크 백작부인과도 결국에는 의미없이 헤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병적이 공포에 시달리며 살면서도 아름다운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결국 그의 헌신적인 삶?으로 인해 후세의 사람들만 호강하고 있는 셈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는 서구 유럽 음악의 전통 안에 러시아 민속 문화의 핏줄이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잘 융합되어 있는데 그가 말하길 “내 작품의 러시아적 요소들은 시골에서 자라며 접했던 러시아 전통 음악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특징들이 유년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한다.

그의 음악을 듣는 청중들이야말로 비통에 빠지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운명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는 과연 누구를 위해 살았으며 누구를 위해 작곡을 했기에 그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을까.

법률가 지망생에서 러시아 최고 작곡가 된 차이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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