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속 '우범지대', 주민들의 '깨순대'가 살렸다

머니투데이 김민중 기자 2015.01.3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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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수서동 임대아파트 지역 자율방범대 '깨끗한 마을 순찰대'

수서주공1단지 등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2006년 자발적으로 만든 자율방범대 '깨순대'(깨끗한 마을 순찰대) /사진=깨순대 제공수서주공1단지 등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2006년 자발적으로 만든 자율방범대 '깨순대'(깨끗한 마을 순찰대) /사진=깨순대 제공


"가끔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있어요. 이때 깨순대가 자식 대하듯 타이르면 바로 끄고 '예, 죄송합니다' 하지요."



지난 28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구 임대아파트인 수서주공1단지 일대. 경찰 조끼와 야광봉을 갖춘 순찰대원 9명이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었다. 총 50여명의 방범대는 4팀으로 나눠 매일 2시간씩 순찰하는 체계를 갖추고 방범활동을 펼친다. 야간 좁은 골목이나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까지 물샐 틈 없는 철통보안의 자율방범대. 일명 '깨순대'(깨끗한 마을 순찰대) 이야기다.

깨순대는 2006년 수서동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방범대다. 이들은 2200명의 장애인 등 총 4000명의 주민이 입주한 수서주공1단지아파트와 수서6단지아파트 주변을 책임지고 있다. 한 때 우범지역이었던 이곳은 깨순대 활약으로 인해 안전지역으로 거듭났다.



이종권 깨순대 회장(61)은 "타 지역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기 위해 이곳으로 원정 올 정도였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이런 환경을 임대 아파트 주민 스스로 개선해보고자 만든 자율방범대를 조직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이 지역에선 깨순대가 수서파출소 자율방범대 역할을 수행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훈 수서주공1단지 경비원(61)은 "1998년 이 일을 시작할 당시 하루에 신고가 5~6건 정도 들어왔다"며 "깨순대가 활성화되면서 현재는 한 달에 1건 들어올까 말까 한다"고 말했다. 이영미 깨순대 총무(62·여)는 "LH 통계자료를 보면 1단지는 한때 최악의 우범지대였다"며 "하지만 깨순대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2012년부터 안전한 단지로 꼽히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깨순대와 협업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방범파트너'로서 깨순대를 치켜세웠다. 깨순대 활동 덕에 중요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 수서파출소 관계자는 "2년전 여기 부임한 이래 강력범죄를 저지른 임대아파트 주민을 4년 징역에 처하게 한 적도 있다"며 "깨순대의 활약으로 강력범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총무는 "큰 범죄는 경찰이 맡고 경미한 건은 우리 깨순대가 유연하게 처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파출소 경찰들과의 사이가 돈독해진 게 깨순대 활동을 하며 얻은 또 하나의 기쁨"이라며 "경찰이 하는 일 일부를 우리가 맡아 하고 경찰이 머슴처럼 궂은일을 처리해주니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임대 아파트와 인근 일반 분양 아파트 사이 반목도 완화됐다. 이 총무는 "일반 아파트 주민들은 으레 임대 아파트 주민들과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최근 깨순대가 점차 인정받자 일반 아파트 주민까지 가입할 정도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깨순대는 법인체로 전환하라는 주변 권유에도 향후 자생단체로 남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회장은 "법인체로 전환하면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많든 적든 중요치 않다"며 "그저 우리 마을을 우리 손으로 정화시키고픈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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