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학생과 교수가 만든 KAIST 창업 신화

기획취재부 테크앤비욘드 편집부 2015.0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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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기업의 산실을 찾아서] KAIST 출신 기술기업 성장기

괴짜 학생과 교수가 만든 KAIST 창업 신화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 네이버를 만든 이해진 네이버 의장,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의 아버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이 세 명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로 KAIST 대학원(전산학 전공)도 함께 다닌 삼총사다. 공부보다 창업에 더 관심이 많았던 이들의 아지트는 기숙사였다. 김정주 대표와 이해진 의장은 당시 기숙사 룸메이트였고, 옆방에 송재경 대표가 있었다.



당시 KAIST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이 가능했던 곳이어서 그들에게 학교가 천국이었다. 이들이 기숙사에 틀어박혀 테트리스 게임에 열중했다는 얘기는 업계의 유명한 일화다. 자유롭게 인터넷을 서핑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그들에겐 놀이이자 공부였고, 그것이 결국 평생의 업이 된 셈이다.

당시 김정주 대표를 지도했던 이광형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이들에 대해 “유별난 학생들이었다. 다른 교수들과 달리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풀어주다 보니 그런 특이한 학생들이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김정주는 원래 내 연구실 소속 학생도 아니었다. 수업도 잘 안 들어가고 듣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러다보니 결국 쫓겨서 우리 연구실로 오더라”며 너털웃음을 보인 이 교수는 “어느 날은 머리를 붉은 색으로 염색해서 다니더니 또 어느 날엔 노란 머리가 되어 나타났다. 귀걸이도 한 쪽 귀엔 동그란 모양, 다른 쪽엔 네모난 모양을 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이다 보니 야단맞을 걸 걱정했던 모양인데 난 오히려 멋있다고 했다. 창업은 모범생 타입의 평범한 사람은 저지르지 못한다. 제멋대로 하는 성격이 필요하다”며 제자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자율성 기반의 스타 벤처 요람
KAIST가 개교 이래 배출한 인재만 해도 7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벤처기업의 주역으로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1980년대 터보테크 장흥순, 나노엔텍 김광태, 메디슨 이민화 대표가 벤처 창업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1990년대 들어서는 넥슨을 설립한 김정주, 네이버 이해진, ELK 신동혁, 네오위즈 나성균, 아이디스 김영달 대표가 벤처 열풍의 중심에 섰다.

KAIST가 배출한 벤처스타로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이해진 네이버 의장의 경우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삼성SDS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던 그는 KAIST 시절 동기들이 하나 둘 창업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 오라클 매뉴얼을 읽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재미삼아 한글 검색엔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뒤늦게 프로그래밍에 재미가 들린 그는 KAIST 시절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개발에 매달렸다. 문제는 인터넷 서비스를 강조하면서도 외산 소프트웨어를 위주로 하는 회사 상황이었다. 결국 이 의장은 그가 ‘대단하다’고 여겼던 친구들처럼 창업가의 길을 걸었고 지금의 네이버로 키워냈다.

영상보안시장의 핵심제품인 DVR과 카메라를 생산·판매하는 아이디스의 창업은 김영달 대표가 KAIST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7년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김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교환연구원으로 갈 기회를 얻게 됐고 실리콘밸리의 벤처 창업 열기를 체험하면서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창업에 뜻을 둔 동지들을 찾아 팀을 꾸렸고 창업 아이템을 물색했다. 김 대표는 우연히 경비실 한 쪽 구석 비디오 녹화 테이프를 보던 중 녹화시간에 제약이 있고 원하는 화면을 찾기 어려운 비디오테이프의 한계에 생각이 미쳤고 그 순간 무릎을 쳤다. 비디오테이프 대신 디지털 기술로 영상을 기록하는 보안장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DVR 시장 1위로 올라선 아이디스는 창업 13년 만인 2010년 연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고 최근 3년 내내 연매출 1000억 원대를 유지하는 건실한 강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에도 KAIST인들의 벤처창업 도전은 계속됐다. 메디톡스 정현호, 뉴로스 김승우, 이녹스 장경호, 엔써즈 김길연 대표 등이 모두 KAIST 출신이다.

괴짜 학생과 교수가 만든 KAIST 창업 신화
창업 독려하는 괴짜교수
기술기업의 산실 KAIST 내에서도 기술기업인이 유독 많이 탄생한 연구실들이 있다.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의 연구실이 특히 그렇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교수의 연구실에는 창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 최초로 인터넷을 만들 정도로 실험정신을 가진 전 교수가 새로운 기술을 통해 창업에 도전하는 제자들을 지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김정주 대표는 박사과정 당시 6개월 동안 전길남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김 대표는 미처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한 중퇴생이라 제자라고 말하기 멋쩍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창업 스토리를 소개할 때면 전 교수 문하생이었음을 꼬박꼬박 언급한다. 김정주 대표를 비롯해 송재경 대표, 허진호 트랜스링크캐피탈코리아 대표(아이네트 창업자), 박현제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CP(전 솔빛미디어 대표), 정철 전 삼보컴퓨터 대표 등 한국 IT계에 한 획을 그은 이들 모두 전 교수의 제자들이다. 전 교수는 2000년 무렵 제자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아시아 지역의 유망 인터넷 기업을 발굴하기 위해 인큐베이팅 컨설팅업체 네트워킹닷넷을 설립하고 직접 대표를 맡은 적도 있다.

드라마 ‘카이스트’의 괴짜교수의 모델로도 유명한 이광형 교수의 연구실 출신 중 대표적인 기업인으로는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 김정주 NXC 대표, 김준환 올라웍스 대표, 신승우 네오위즈 공동창업자 등이 손꼽힌다. 1990년대 KAIST에 분 벤처 바람은 이광형 교수가 미국 스탠퍼드대학으로 연가를 떠나면서부터다. 이 교수의 눈에 비친 스탠퍼드대학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학교 곳곳이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들로 득실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연구실 학생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일 결심을 했다.

이 교수는 “현지 회사와 접촉해 내가 기술을 개발해 줄 테니 연구비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두 곳에서 프로젝트를 받아서 그 돈으로 학생들이 미국 연수를 시켰다”고 회상했다. 처음 1~2주 동안 적응하기에 벅찼던 학생들이 어느새 곧잘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회사 입장에선 일 잘하고 성실한 KAIST 학생들이 직원으로 계속 남아주길 원했다. 하지만 이광형 교수는 딱 잘라 거절했다. 연수 목적은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벤처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6개월마다 7명의 학생들이 서로 번갈아가며 기업 연수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연구실 내에서 어떤 기술을 갖고 회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세미나가 계속 이어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기업이 넥슨, 아이디스, 네오위즈 등이다. 현재 이광형 교수 연구실 출신 기업인들이 벌어들이고 있는 매출액만 2조 원에 달한다. 이 교수의 스탠퍼드대학 연가에서 시작된 나비효과가 말 그대로 벤처 돌풍을 일으킨 셈이다.

괴짜 학생과 교수가 만든 KAIST 창업 신화
최근 KAIST 출신 기술기업인들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KAIST 전산학과 졸업생인 박성진 카이스토리 대표는 KAIST 동문 소셜펀딩을 통해 회사를 세우고 동문기업 스토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박 대표는 “KAIST라는 기술 브랜드를 콘텐츠화하려고 한다. 과학기술지식을 만화나 소설, 영상으로 만들어 일반인에게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것”이라며 “창업과 신사업이 태동한 KAIST와 대덕 특구의 문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나아가 기술기업인과 학생들을 연결하는 멘토링 시스템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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