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 대통령과 기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4.11.2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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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보는세상] 대통령과 기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전북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탄소 기타를 잡은 모습이 다음날 신문 1면의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이 장면은 보수적이고 모범적인 그간의 박 대통령 이미지를 단박에 날려버리는 '모종의 신선함'이 배어있기 충분했다.

기타라는 악기가 태생적으로 '삐딱함'의 상징으로 비쳐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록이 음악의 주류 장르로 떠오른 것도, 클래식이 팝으로 전환된 것도 바로 기타라는 악기의 등장 덕분이다.



여러 사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코드'(Chord)를 잡고 있는 박 대통령의 손이었다. 기타에 손을 두루뭉술하게 얹고 있는 신문 속 사진 모습과 달리, 고개를 숙이고 자못 진지하게 연주하려는 동작의 사진 속에는 박 대통령이 G코드를 '정확히' 짚고 있었다.

7음계 중 솔을 근음으로 하는 G코드는 여성의 톤에 맞는 기본 코드이자, 기타를 시작하는 입문자들이 꽤 까다로워하는 코드로 통한다. 기타 1번 줄과 6번 줄을 동시에 잡아야해서 손가락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소화하기도 쉽지 않은 코드 중 하나다.



박 대통령이 잡은 G코드는 운지법도 정확했다. 검지와 중지, 소지를 지판에 놓고 엄지를 기타 넥 뒤에 살포시 받치는 모습 자체는 배운 티가 넘치는 여느 뮤지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기타를 잡은 모습은 여러 차례 공개됐다. 2006년 방문한 중국 칭다오의 악기점에서 기타를 튕기며 즐거워했고, 1960년대 고교시절엔 야외에서 주로 클래식 기타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도 했다.

개그맨 신동엽이 기타를 수준급으로 연주한다는 소문이 한때 연예계에 퍼졌다. 신동엽이 참다못해 방송에 나와 '해명'했다. "제 비결은…"하며 기타로 첫 4마디만 연주하고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한 뒤 그 다음 마디를 '생략'하는 게 비결이었다. 그는 "원곡과 똑같은 4마디만 보여주면 사람들은 아주 잘 치는 사람으로 오해한다"며 "시간 들이지 않고 줄 수 있는 가장 큰 각인효과"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이 악기를 드는 장면은 늘 화제였다. 나랏일을 하는 큰 그림에서 잠시 빠져나와 서민이 즐기는 음악회 놀이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작은 위로와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대통령님, 기타 코드 잡을 줄 아세요?"에 한 번 놀라고, "그럼 조금이라도 들려주실래요?"에 두 번 놀라고, "같이 노래해도 될까요?"에 세 번 놀라는 소통의 문화를 대한민국 국민은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설픈 기타 실력과 불안한 음정으로 '상록수'를 부르며 서민에게 작은 웃음 보따리를 선물한 기억이 선명한 건 그가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박 대통령이 G코드로 그치지 않고, 관계 코드인 Bm, D, E까지 확장해 4마디가 아닌 완곡을 연주해주길 기대한다. 이승철이 독도에서 부른 통일송 '그날에'를 연주하는 대통령을 본다면 '통일 대박'을 외치는 박 대통령의 진의를 국민은 스폰지처럼 빨아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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