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칼퇴' 독일 직장인, 한국 기업에 인수되자…

머니투데이 비터펠트볼펜(독일)=류지민 기자 2013.07.06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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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독일 큐셀 인수 10개월… '속도' 핵심 한국식 문화 이식 후

자동화 시스템에 따라 돌아가는 한화큐셀의 셀 생산라인 모습/사진제공=한화큐셀자동화 시스템에 따라 돌아가는 한화큐셀의 셀 생산라인 모습/사진제공=한화큐셀


'성실함'과 '정확함'.
독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다. 특히 근무시간을 지키는 이들의 철저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직장 근로자의 대부분은 8시에 출근해 5시면 칼같이 집에 간다. 눈치를 보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없다. '일할 땐 열심히 하고 쉴 땐 확실하게 쉰다'는 사고방식이 보편화돼 있다.

하지만 독일 비터펠트볼펜에 위치한 한화큐셀 본사는 다르다. 한화큐셀 조헨 엔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오후 6시가 훌쩍 지난 시간. 여느 회사에서라면 텅 비어 있어야 할 사무실 곳곳에 회의를 하고 있는 독일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과 이후 개인적인 시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독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다.



한화가 세계 최고 태양광 회사인 큐셀을 인수한지 10개월. 한화큐셀에서는 독일식 '칼퇴(퇴근시간에 칼처럼 퇴근하는 것)' 문화가 유연하게 바뀌는 등 한국과 독일 문화의 융합이 한창이다.

박진홍 한화큐셀 매니저는 "처음에는 인수 작업에 정신이 없던 한국 직원들만 야근을 했는데 어느 순간 독일 직원들이 한두 명씩 자발적으로 남더니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한국인의 열정을 배우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독일인이 한국인 직원들에 마음을 연 것은 회사가 공중분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화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 지난해 태양광 산업의 불황의 여파는 큐셀도 피해갈 수 없었고,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 큐셀을 한화는 대부분의 인력을 그대로 고용승계하며 살려냈다.

한화큐셀이 있는 독일 작센안할트주는 튀링겐·작센주와 함께 세계 최대 태양광 클러스터인 '솔라밸리(Solarvalley)'를 구성하는 지역. 한때는 독일에서 생산되는 태양광 전지의 절반 이상이 생산될 만큼 태양광 산업의 메카였던 이곳에 이제는 한화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한화가 큐셀을 인수한 뒤 한화큐셀은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큐셀이 한국의 'Agility(기민함)'을 받아들여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헨 엔들(Jochen Endle) 한화큐셀 홍보담당 이사는 "큐셀은 독일 특유의 꾸준함과 근면성실을 갖추고 있었지만 시장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한화 인수 이후 '속도'를 핵심으로 하는 한국식 문화를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며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식 경영체제를 무턱대고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화큐셀 본사에 근무하는 독일 직원은 750명. 한화 직원 12명이 마구잡이식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상호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화큐셀에서는 매달 전 직원을 상대로 한 경영설명회를 연다. 지난 한 달 동안 얼만큼 생산해 얼마나 팔았고 수익은 얼마가 났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자리다. 인수 이후 새로 도입된 제도. 개선사항을 제안 받아 선정된 의견에 대해 포상을 실시하기도 한다. 직원들의 호응은 뜨겁다.

한화큐셀의 변화는 실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2분기 출하량이 6개월 전과 비교해 70% 이상 증가했고, 적자폭도 지난해 4분기 대비 20% 이하로 줄었다. 태양광 업체 상위 10개사의 매출이 모두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한화큐셀을 비롯한 3곳은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다결정 셀의 효율을 높인 퀀텀 셀의 생산 비율이 계속 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이 같은 성과는 기존에 큐셀이 보유하고 있던 높은 기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직접 둘러본 셀 제조 공정은 대부분이 자동화로 이뤄지고 있다. 사람 크기의 로봇이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광경은 사람이 일렬로 앉아 셀을 만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한화는 큐셀이 보유한 높은 기술력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업황 악화와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법정관리에 이르렀지만 큐셀이 기술개발에 쏟아 부은 노하우와 보유한 최첨단 설비들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큐셀 인수 당시 자산 양수도금액 4000만유로(약589억원)와 말레이시아 공장 차입금 8억5000만링깃(약3046억원)을 투자한 한화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투자를 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인수 이후 말레이시아 공장은 증설을 통해 생산규모를 800MW에서 900MW로 늘렸다.

한화큐셀 관계자는 "한화가 큐셀을 인수한 것은 단순히 기술이나 장비를 빼먹거나 되팔아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태양광 사업을 이어가려는 확고한 의지가 바탕이 됐다"며 "인수 이후 한국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 태양광 산업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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