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면 또···" 불법 분양현수막 '거리의 무법자'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2013.02.19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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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현수막', '인간현수막' 등 진화하는데 단속인력은 부족

↑영등포구청역 인근 도로옆 불법 현수막을 가득 실은 트럭.ⓒ송학주 기자↑영등포구청역 인근 도로옆 불법 현수막을 가득 실은 트럭.ⓒ송학주 기자


 "벌금 내도 상관없어요. 거리 현수막 광고 효과가 생각보다 좋거든요. 물론 불법인 거 잘 알고 있죠."(한 건설업체 분양사무소 직원)

 18일 서울 영등포구청역 인근의 한 교차로. 구청직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도로변 나무 사이에 잔뜩 내걸린 불법 현수막을 뜯어내 트럭에 싣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트럭 뒤에는 현수막이 수북이 쌓였다. 대부분 아파트·오피스텔 분양광고 현수막이었다.



 최근 서울시내에서도 대로변에 나부끼는 현수막 광고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 현수막은 각종 미사여구를 통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관심을끌고 있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한 가지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현수막에는 휴대전화 번호만 적혀 있을 뿐 해당물건은 물론 업체명조차 찾아볼 수 없다. 지나가던 한 행인은 "현수막 내용을 보면 오피스텔 분양광고인 것 같은데 어느 오피스텔이고 어느 업체가 광고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그래도 이들 현수막을 보면 정말 그런 수익률이 가능한지 혹해 전화를 걸어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수막이 너무 어지럽게 난립하다보니 보기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구청 공무원들이 도로옆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송학주 기자↑구청 공무원들이 도로옆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송학주 기자
 ◇과태료 내면 '그뿐'…'게릴라' 현수막까지 등장
 이처럼 공급업체명이 표기되지 않는 이유는 현수막 광고를 게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어서다. 현수막 광고는 지방자치단체가 정해놓은 지정된 게시대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 현수막으로 단속돼 적발되면 수거조치는 물론 과태료도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분양업체가 단속을 각오하면서까지 현수막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용 대비 광고효과가 좋다는 판단에서다. 최근엔 공무원 단속이 없는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설치했다가 회수하는 '게릴라' 현수막이 대세다.

 게릴라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과 달리 광고물 제작·설치·회수까지 비용에 포함되며 서울지역의 경우 장당 3만~4만원이면 된다. 100장을 주문해도 광고효과가 가장 좋다고 알려진 인터넷 배너광고의 5분의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한 분양대행업체 관계자는 "단속에 걸릴 확률이 낮기 때문에 업체들은 과태료 부분을 감수하고 현수막을 만들어 광고한다"며 "적발되면 25만~30만원 정도 과태료를 내야 하지만 한 건말 팔아도 수백만원씩 떨어지기 때문에 업체끼리, 직원끼리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영등포구 일대 도로에 걸려있는 오피스텔 분양 현수막.ⓒ송학주기자↑영등포구 일대 도로에 걸려있는 오피스텔 분양 현수막.ⓒ송학주기자
 ◇'뛰는' 공무원 위에 '나는' 분양업체 직원들
 문제는 이처럼 불법 현수막이 범람하지만 지자체의 단속인력 한계로 단속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구청마다 단속철거반을 운영한다지만 2~4명이 구 전체를 관리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매년 이사철이 되면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게릴라 현수막이 급증해 단속인력이 감당할 수 없게 된다"며 "작정하고 단속을 나가 막상 전화를 하면 '우리가 다는 것을 봤냐'고 잡아떼는 경우가 허다해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해당 지자체가 신고받고 확인하러 나간 사이 현수막이 사라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최근들어선 가로수나 난간에 현수막을 줄로 고정하는 방식이 아닌 '인간 현수막'도 등장했다.

 이는 화물차에 현수막을 싣고 다니며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두 사람이 직접 현수막을 펼치고 서 있는 것으로, 공무원 단속직원이 나타나면 곧바로 도망갈 수 있어 과태료 부담이 없고 평일에도 현수막 광고를 할 수 있어 건설업체들이 선호한다.



 구청 관계자는 "이들은 트럭이나 봉고차에 현수막을 싣고 다니며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과태료 부과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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