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설날 아침에 한 어르신이 홀로 성묘를 가기 위해 눈 싸인 길을 걷고 있다.ⓒ송학주 기자
10일 오전 일찍 차례를 마치고 성묘를 나섰다. 가던 길에 동탄 2기신도시 건설이 한창인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목리 초입에서 송종수(70·가명) 할아버지를 만나 선산이 위치한 근처 야산까지 태워 드렸다. 전날 내린 눈으로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산길을 홀로 걸어 올라가셨다.
"땅이 많으니 보상도 많이 받아 행복하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다"며 "보상비 때문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끼리 등 돌리고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며 말문을 닫았다.
↑동탄2기신도시 인근 도로에 설날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다.ⓒ송학주 기자
마을 곳곳에는 아직 철거하지 못한 폐건물들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성묘를 가기 위해 산으로 향하던 김모(45)씨는 한숨부터 지었다. "몇년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산소에 가려고 나왔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다"며 "정부의 강제적인 신도시 개발로 원하지도 않았는데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동탄에 살았다고 하면 '돈 좀 벌어겠다'며 부러워한다"며 "하지만 실상은 대대로 땅을 물려받은 대지주들이야 그렇지만 많은 원주민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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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2기신도시 예정지인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목리 인근 버스 정거장 모습. 실제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송학주 기자
얼마 안 되는 보상금에 생계의 터전을 빼앗기고 살길이 막막해진 것이야 그저 안타깝고 말 일이다. 하지만 보상금 문제로 가족이 되돌아가기 어려운 불화의 강을 건넌 경우도 많았다.
이모(71)씨는 지난 추석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추석에 내려온 형제들끼리 치고 박고 싸움질을 했다"며 "보상금 5억이 나왔는데 큰형이 3억을 갖고 1억씩 나눠주겠다고 하자 둘째, 셋째 동생이 반발해 싸움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그 이후로 형제들은 의절한 채 남남으로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탄초등학교 신리분교 모습. 동탄2기신도시 예정지로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다.ⓒ송학주 기자
평생을 지켜온 땅 대신 받은 얼마간의 돈. 그 돈으로 인해 멀어진 가족,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살가운 이웃들을 바라보며 아침에 만난 할아버지의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