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특허소송, 배심원제도 한계 드러냈다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2012.08.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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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애플간 특허소송에 대한 배심원 평결과 관련, 특허소송에 대한 배심원제도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려운 사항을 비전문가들이 짧은 시간에 결론을 내릴 경우 논리적,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정서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특허소송의 9명 배심원의 직업은 전기기사, 사회복지사, 가정주부 비 IT분야도 상당수 끼여 있었다. 루시 고 판사는 평결의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스마트기기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배심원으로 선임했다.



이들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양사의 최종 변론 이후 22일부터 24일 평결 때까지 겨우 이틀 반 만에(업무시간으로는 22시간) 양사가 제출한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검토해서, 무려 773개 항목에 대한 답변을 써 내려갔다.

이들이 평결내용을 기재해야 했던 20쪽의 ‘평결양식(verdict form)’은 총 33개 항목이었지만, 각 항목별로도 기기별 질의사항을 모두 합치면 질문 문항이 총 773개에 달했다. 재판과정에서 등장한 모든 이슈들과 상호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12건의 특허(애플은 7건, 삼성은 5건이 침해됐다고 주장) 각각에 대해 손실이 얼마인지도 산정해내야 했다.



더욱이 루시 고 판사는 21일 이들에게 평결의 가이드라인이라며 평결지침을 배포하고 숙지할 것을 배심원단에게 요구했는데 그 분량이 109쪽에 달했다. 고 판사가 배심원들 앞에서 평결지침을 읽어 내려가는 데만 2시간30분이 걸렸다. 평결지침에는 법률 용어, 특허관련 참고사항, 기술용어 등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미국 현지 언론조차 평결 전부터 “배심원들이 어떻게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항목들을 다 검토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일간지 새너제이머큐리는 “결국 배심원들이 엄밀히 검증하기 보다, 누가 좋은 회사(goog guy)이고 나쁜 회사(bad guy)인지, 감성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 IT전문매체인 씨넷은 “법원이 애플 본사로부터 10마일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배심원들 역시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실리콘밸리 출신이기 때문에 애플에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실제, 배심원들의 비전문성이 배심원들의 평결과정에서 노출됐다. 배심원단은 당초 10억5천185만달러의 배상을 평결했으나, 루시 고 판사가 "평결에 두 가지 오류를 발견했다"고 제기하면서 배상액이 10억4천934만달러로 251만달러(약 28억원)이나 줄었다.

배심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마누엘 라간은 25일 IT전문매체 씨넷과의 인터뷰에서 “검토(deliberation) 첫날인 22일 우리 9명은 모두 삼성이 애플에 잘못을 했다는 데 의견일치를 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처럼 복잡하고 방대한 사안에 대해 배심원들이 이처럼 속전속결로 결론을 내린 것은 그만큼 논리나 법리 검토 보다는 감성적으로 접근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구글이나 오라클간 특허 소송의 경우에만해도 약 일주일 정도 소요됐다.

더욱이 배심원들은 검토 과정에서 단 한 번의 ‘노트(판사에게 전달하는 질문사항)’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IT전문 매체 와이어드(Wired)는 “IT에 문외한인 배심원들이 최첨단 지적재산권을 다루는 소송의 평결을 내리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법률전문사이트인 ‘Groklaw’도 “방대한 평결 지침을 배심원들이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평결을 내렸다”며 “배심원들이 의무를 회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률 블로그 ‘Above The Law’는 “평결에 있는 용어를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도 평결이 빨리 나왔다”며 문제제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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