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고 없애고..대선 슬로건 전쟁 '마음을 훔쳐라'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변휘 기자 2012.07.25 16:38
글자크기

손학규 '저녁이 있는 삶' 인기에 경쟁후보 긴장

"슬로건 좋던데, 좀 빌릴까요." (문재인 상임고문)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손학규 고문)

여야 대선 후보들의 슬로건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은 지난 23일 방송토론회에서 손 고문에게 "제가 대선후보가 되면 손 고문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을 빌려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듣기에 따라 도발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손 고문의 슬로건이 탐난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손 고문은 "제가 대선후보가 될 텐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바꾸고 없애고..대선 슬로건 전쟁 '마음을 훔쳐라'


대선후보라면 누구나 절묘한 슬로건을 원한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짧은 문장이다. 잘 만든 슬로건 하나는 막강한 대중 호소력으로 이어지며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1997년 대선 당시 '준비된 대통령'(김대중), 2007년 미국 대선의 '예스 위 캔'(버락 오바마)이 대표적이다.

각 주자들은 당내 경선과 대선 본선을 앞두고 히트 슬로건 제조에 사활을 거는 한편 여론의 반응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이름의 초성만 적은 'ㅂㄱㅎ'를 심볼 이미지로 내세웠다. 경쟁자인 김문수 후보는 경선출마선언 당시 '마음껏! 대한민국'을 내밀었다가 포스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구로 교체했다.

김 후보 측은 "박 전 대표의 독주로 당내 민주주의가 퇴색해 '민주 대 반민주'를 부각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 후보의 독주가 굳어진 새누리당에서 슬로건 경쟁의 열기는 다소 약하다는 평가다.

바꾸고 없애고..대선 슬로건 전쟁 '마음을 훔쳐라'
반면 민주당에선 경쟁이 뜨겁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지난 24일 '빚 없는 사회'라는 원래 슬로건을 버리고 '내일이 기다려진다'는 새 것을 공개했다. 흔히 PI(Presidential Identity)로 불리는 심볼 이미지도 교체했다.


정 고문은 민주당 경선주자 8명 가운데 '빅4'로 꼽히면서도 2, 3위를 다투는 손학규 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에 비해 열세로 평가된다. 눈에 띄는 새로운 슬로건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모색한다는 각오다.

손학규 고문은 여유가 넘친다. 손 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은 등장하자마자 인기를 얻으며 직장인들의 건배사로 쓰일 만큼 확산됐다. '저녁'은 시간적 의미뿐 아니라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상이란 의미도 함께 지닌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이 이런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약속이다.

문재인 고문은 '사람이 먼저다', 김두관 전 지사는 '평등국가'와 '내게 힘이 되는 나라'를 각각 내세웠지만 현재까지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문 고문은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를 겨냥, 대선 본선에서 꺼내려 했던 '대한민국 남자'는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했다.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라는 반응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에 적어도 슬로건 경쟁에서만큼은 손 고문이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슬로건 경쟁이 경선의 역동성을 키우는 또 다른 역할도 하는 셈이다.

바꾸고 없애고..대선 슬로건 전쟁 '마음을 훔쳐라'
야권성향 싱크탱크인 국가비전연구소의 정기남 소장은 "손 고문 슬로건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3040 세대 여론 주도층에서 반향이 좋다"며 "준비된 후보라는 이미지가 여기에 더해지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켜 지지율 제고에도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이 때문에 손 고문과 김 전 지사의 2·3위 싸움이 치열해지고 두 사람과 문 고문의 격차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캠프들이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PI는 원래 마케팅 용어이지만 최근 정치 분야에도 안착했다. '기업 정체성'을 CI(Corporate Identity)라고 하듯 최고경영자, 스포츠스타 등 리더의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일컫는다.

PI를 구현하기 위한 대표적 수단이 선거 슬로건과 이를 응용한 심볼 이미지다. 최근 기업들도 최고경영자의 PI가 전반적인 CI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PI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바꾸고 없애고..대선 슬로건 전쟁 '마음을 훔쳐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