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로 12살 어린아이 폭행, 120일 그후…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12.02.10 09:23
글자크기

[머니위크 커버]연중기획 '함께 맞는 비' ①생명나눔/'묻지마 범죄' 피해자 돕기

지난해 9월27일 경남 김해의 한 아파트에서 끔찍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났다.

엘리베이터 CCTV에는 피의자 김모씨가 당시 12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리자, 함께 타고 있던 이모양(12)의 머리를 망치로 한차례 내리치는 장면이 녹화됐다. 김씨는 이어 이양의 친구인 박모군(12) 역시 흉기로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고, 범행 후 곧바로 계단을 통해 14층으로 올라간 뒤 투신자살했다.

사고 직후 박군과 이양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과다출혈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튿날 새벽 0시30분에 수술을 마쳤습니다.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습니다. 그날이 우리 아이의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흉기에 머리를 크게 다쳐 생명이 위독했던 박군의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혈종 제거와 두개골 인공뼈 복원수술을 받아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했다"며 그날의 아찔한 기억을 떠올린다.

이날 함께 사고를 당한 친구 이양이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집 문을 두드렸을 때, 그 순간은 아득함 그 자체였다. 박군의 아버지는 당시는 너무 충격을 받아 "119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멍한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언뜻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아이부터 살려야한다"는 주변사람들의 외침에 황급히 병원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면 우리 아이는 지금 땅 속에 있을지도 모르죠. 과다 출혈로 수혈을 하고 겨우 혈압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수술에 들어갔으니까요."

이양에 비해 좀 더 심하게 피해를 입은 박군은 1차 수술에 이어 지난해 10월 중순 2차 수술을 받았다. 심하게 함몰된 정수리부분 수술은 대뇌 전체에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혈관이 지나는 곳이라 수술의 위험성이 매우 높았다. 박군 아버지는 "병원에서는 수술결과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의연하게 견뎌낸 아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군이 생사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뒤에도 엄청난 수술비와 장기간 치료비는 가족에게 크나큰 위협이 됐다. 1차, 2차 수술비와 치료비만 2000여 만원에 달했다. 이후로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신체적·정신적 치료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 알 수 없었다. "일을 당하고 나서 깊은 절망감에 빠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치료비와 생활고에 마음이 더 답답했습니다."

당시 박군 아버지는 25t 트럭을 운행하다가, 불황으로 차량 할부금마저 갚을 수 없어 차량을 중고차로 처분했던 상태였다. 어머니가 벌어오는 월 9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사고 직후 한 방송에서는 국가가 치료비에 대해 100% 지원해준다고 자막을 내보냈는데 참으로 어이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국가나 시에서 받은 돈은 단 한 푼도 없습니다. 국가에서 주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이 있다지만 최대 500만원인데다 심의 절차가 길고 까다로웠습니다."

이때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온 것이 생명나눔재단의 지원이었다. 경남 김해에 있는 생명나눔재단은 치료비 2000만원을 긴급 지원하고 모금운동에 나섰다. 박군은 이러한 생명나눔재단과 학교 등 주변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건강이 빠르게 호전돼 가고 있다.

박군 아버지는 "지금은 격한 운동만 피하면 될 정도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게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머리의 흉터자국도 언뜻 보면 모를 정도로 회복됐다. "뇌 사진을 찍으면 뇌세포가 어린애 주먹만큼 시커멓게 죽어 나오는데, 생활하다가 간질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해서 1년 정도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정신과 치료도 격주로 받고 있다. 박군은 한때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고통에 "집에 절대 안 갈 거야, 엘리베이터도 안 탈 거야"라며 공포심과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사고를 당했을 때는 세상사람들이 전부 범인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사고 이후 하루 수십 명이 찾아오고 격려해주는 것을 보면서 아직 정이라는 것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박군 아버지는 아직은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여러분의 성원에 한 점 부끄럼없이 반듯하게 잘 키우겠다"며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으니 월 5만원, 10만원이라도 후원을 하고 싶고 모금 운동 등 봉사활동에도 나서고 싶다"고 웃었다.

■경남 김해 '생명나눔재단'은 어떤 곳?
-풀뿌리 모금으로 7년간 90여 명 생명 지원

"돈이 없어 사람의 생명이 소멸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이기에 지역주민들이 작은 힘을 십시일반 모으고 있다."

지난 2004년 9월 창립된 경남 김해의 생명나눔재단은 정부 지원은 일체 받지 않고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 재단이다. 당시 김해시 진영읍에 망막모세포종이라는 난치병으로 투병하는 어린아이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역주민 155명이 1억4000만원을 모아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의 임철진 사무총장은 "지역적으로 조손가정이 많은 곳으로 소외계층이 많다"며 "이러한 환경에서 질병 및 사고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지역공동체가 보듬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아 출범했다"고 밝혔다.

재단은 출범직후인 2004년 10월 콩팥에 발생하는 윌름스 종양으로 투병중인 이다빈(당시 생후 8개월) 양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90여 명에게 30여 억원을 지원했다. 임 총장은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회원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생명 나눔의 정신에 공감하는 풀뿌리 손길들이 많다는 것이다.

'1685명.(1월26일 현재)' 생명나눔재단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재단이 소외된 이웃을 보살필 수 있는 '힘'이 이렇게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제시돼 있다. 재단이 소외 이웃을 지원할 수 있도록 매달 5000원 이상의 후원금을 내는 '1% 나눔회원'의 숫자다.

나눔의 방법 또한 다양하다. 재단은 기업단체의 기부를 비롯해 물품기부, 골수기증, 헌혈증 기증, 자원봉사 신청도 받고 있다. 임 총장은 "꼭 돈이 아니더라도 중소기업 같은 경우 잉여 생산품을 후원할 수 있고, 가정에서는 냉동실의 남는 고기 등으로 반찬을 만들어 기부할 수 있으며 재능이 있는 경우 아이들 케어에 나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생명 나눔의 동참 문의는 (055) 335-9955를 통해 상담 받을 수 있다.
TOP